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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맨유 복귀로 본 스포츠스타 '컴백 홈'

입력 : 2021-10-05 09:07:53 수정 : 2021-10-05 09: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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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복귀는 지난여름 유럽 축구계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라이벌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FC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생제르맹(PSG·프랑스)로 이적한 것도 큰 화제였지만, 호날두의 친정팀 복귀는 과거 박지성과 함께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의 '컴백 홈'으로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호날두는 맨유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스타다. 포르투갈 명문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프로 데뷔한 호날두는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맨유와의 친선경기에서 당시 세계적인 명장이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고, 데이비드 베컴의 등번호 7번을 이어받아 맨유로 이적했다.

 

18살의 호날두는 맨유로 가면서 스포르팅에 이적료 1224만 파운드(약 198억원)를 안겼고, 이는 당시 10대 선수 최고 몸값이기도 했다.

 

이후 호날두는 맨유에서 수많은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퍼거슨 전 감독의 특급 조련 아래 6년을 뛰며 EPL은 물론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EPL 우승 3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을 차지했다. 특히 2008년에는 맨유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기도 했다.

 

퍼거슨 전 감독은 훗날 자서전에 "호날두와 함께했던 이 당시의 맨유가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밝혔다.

맨유에서 통산 292경기에 출전해 118골 69도움을 올린 호날두는 2009년 6월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맨유에 지불한 이적료 9400만 유로(약 1300억원)는 세계 최고 이적료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공 가도를 이어간 호날두는 2018년 유벤투스(이탈리아)를 거쳐 2021년 8월 친정팀 맨유로 복귀를 전격 결정했다.

 

호날두는 애초 맨유의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의 관심을 받았으나, 은사인 퍼거슨 전 감독과 맨유에서 전성기를 함께했던 옛 동료들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맨유의 전설적인 수비수인 리오 퍼디난드는 "호날두가 맨유로 돌아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나"라며 "퍼거슨 전 감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호날두 복귀에 맨유에서 등번호 7번을 사용 중이던 에딘손 카바니(우루과이)는 기꺼이 과거 호날두가 사용하던 등번호 7번을 양보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날두의 복귀가 맨유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공식 복귀전이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암표값이 400만원까지 치솟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호날두는 복귀전에서 복귀골로 팬들에게 화답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도 친정팀으로 돌아간 대표 선수 중 한 명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박지성은 스승인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로 건너가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했다.

 

유럽 적응을 마친 박지성은 2004~2005시즌 아인트호벤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공헌하며 전 세계 빅클럽의 관심을 받았고, 퍼거슨 감독의 러브콜로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현역 시절 '산소 탱크'란 별명을 가진 박지성은 맨유에서 호날두, 웨인 루니, 퍼디난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2007~2008시즌에는 EPL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동시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0년대 후반기부터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이 손흥민이었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진 박지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였다.

 

2012년 맨유를 떠나 퀸즈파크레인저스(QPR)로 이적한 박지성은 2013년 여름 자신이 유럽 축구를 처음 시작한 아인트호벤으로 돌아갔다.

 

홈구장인 필립스 스타디움에는 박지성의 응원가 '위송빠레'가 울려퍼졌고, 박지성은 아인트호벤에서 베테랑 역할을 하며 화려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내 축구에선 박지성의 뒤를 이어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했던 기성용이 지난해 7월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11년 만에 친정팀 FC서울로 복귀해 화제가 됐다.

 

기성용에 앞서 박주영도 친정팀 서울로 돌아온 케이스였고, 올해 여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권창훈이 친정팀 수원 삼성으로 복귀했다.

 

유럽파 선수들이 모두 친정팀으로 돌아온 건 아니다. 서울에서 프로 데뷔한 이청용은 지난해 친정팀 서울이 아닌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국내 야구에선 '라이언 킹' 이승엽이 2011년 일본 생활을 접고 8년 만에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왔고, '빅보이' 이대호가 2017년 일본과 미국에서 뛰다 6년 만에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한 바 있다.

 

농구에선 마이클 조던이 컴백 홈 역사를 쓴 대표적인 스타로 꼽힌다.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에서 1993년부터 3연패를 이룬 조던은 아버지의 꿈이던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 선수로 전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년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조던은 1995년 등번호 45번을 달고 농구 코트에 복귀했고, 또 한 번 시카고의 3연패를 이끌었다.

 

국내 여자배구에선 김연경이 친정팀으로 돌아와 화제를 모은 선수였다. 유럽에서 전성기를 보낸 뒤 유럽에서 처음 시작한 클럽에서 은퇴한 박지성과 달리 한국에서 데뷔한 김연경은 한국 팀으로 돌아와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2005년 당시 천안을 연고로 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드래프트 된 김연경은 국내 무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2009년 해외 무대로 나가 일본, 터키 등에서 뛰다가 2020년 6월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각국의 리그 운영이 어려워지자 1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복귀를 선언했다.

특히 김연경은 국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았을 수 있었지만, 샐러리캡 제도가 있는 배구 특성을 고려해 예상보다 적은 금액의 계약서에 사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록 지난 시즌을 끝으로 다시 해외로 나갔지만, 김연경 컴백은 배구 팬들에게 큰 선물과도 같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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