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여 전 10만건에 달하는 페이퍼컴퍼니 자료가 공개돼 세계를 뒤흔들었다. 여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를 필두로 세계 각국의 권력층과 부유층이 역외기업을 통해 재산을 빼돌린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인 190명도 포함됐다. 이 자료는 역외탈세와 돈세탁, 검은돈 은닉 등을 도와주던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돼 ‘파나마 페이퍼스’라 불린다. 모색 폰센카는 2년 만에 문을 닫았고 무려 120여만건의 자료가 추가로 쏟아졌다.
파장은 컸다.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이 사퇴하거나 법의 심판을 받았다. 환수금액도 약 1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국들도 조세회피처를 지정하며 고강도 제재에 나섰다. 조세회피처의 원조인 스위스은행들까지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금융비밀주의 철폐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이번에는 ‘판도라 페이퍼스’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그제 세계 117개국 150개 언론사에 600명의 기자가 참여한 탐사취재 결과물을 내놓았다. 확보한 문서가 1190만건으로 파나마 페이퍼스를 압도한다. 전세계 90개국 고위 공직자 330명과 포브스지에 등록된 억만장자 90여명의 해외계좌와 거래명세가 담겼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1100여억원에 달하는 미국과 영국의 호화주택 14채를 몰래 매입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2017년 100억원대 빅토리아 시대 건물을 사들였고 최소 5억원의 세금을 회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케냐·에콰도르 대통령, 체코 총리 등 전·현직 지도자 35명이 해외로 돈을 빼돌리거나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인 275명도 의혹에 휩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 역외자산은 11조3000억달러(1경3400조원)에 달한다. 이 중 조세회피와 범죄에 연루된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판도라 페이퍼스는 권력층과 거액 자산가의 탐욕과 부패·비리가 갈수록 커지고 대담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권력형 비리 ‘대장동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와 투명한 정보공개가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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