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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해야지, 해야지 결심만 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입력 : 2021-09-10 16:02:21 수정 : 2021-09-10 21: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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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골 때리는 그녀들’ 캡처 

 

엊그제 ‘골 때리는 그녀들’ 봤지? 사실 많은 사람이 목요일 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보는 낙으로 1주일을 산다지만 나는 시즌 2가 주는 지루함에 큰 매력을 못 느끼고 있어. 마치 주말 연속극을 보는 심정으로 의무감에 보는 중이야. 아마도 질질 끄는 사랑 이야기가 이제는 좀 지친 듯해. 또 사랑에 목멜 나이도 지났고, 사랑 그 찰나의 가벼움이 인생을 찬란하게도 하지만 인생을 조금 피곤하게도 한다는 사실을 진작 알아서일 지도 모르겠다.

 

매주 수요일 밤 나는 골때녀를 보는 낙으로 산다. 운동에는 젬병이고, 운동에 ‘운’자로 몰라 매번 축구 마니아인 아들에게 여전히 호나우두와 메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고 또 묻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이 참 좋아.

 

처음 설 특집 파일럿으로 방송됐을 때부터 단 한편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고, 가능하면 ‘본방 사수’, 어쩔 수 없이 못 하는 날에는 VOD가 올라오는 즉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꼭 보고 있어. 무슨 대단한 유머가 있는 프로그램도 아닌데 나는 왜 이토록 빠졌을까.

 

엊그제는 내가 많이 응원했던 ‘구척장신팀’이 결국 3·4위전에서 0-3으로 패배한 경기가 방송되었어.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펑펑 통곡을 하는 모델 이현이에게 빙의가 되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 옆에서 보던 아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엄마 도대체, 왜 이 프로그램만 보면 울어”라고 묻는 거야.

 

글쎄, 나는 이 프로그램에서 매번 승리를 거머쥐는 팀보다는 지는 팀에 정이 가고 마음이 쓰여. 그래서 다음주 방송될 결승전에서도 이길 것이 뻔한 ‘불나방팀’보다는 ‘국대 패밀리’를 응원할 것 같고, 국대 패밀리가 이겼으면 좋겠어. 특히 국대 패밀리팀에는 육아맘 혹은 워킹맘이 많아서 정이 더 많이 가.

 

어제는 구척장신팀 한혜진(사진)이 결국 부상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고 말았어. 중간에 코로나 확진으로 2주간 팀 훈련을 하지 못했고, 후유증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한혜진이 악바리 근성으로 복귀 후에도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공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지. 설상가상으로 팀의 에이스인 차수민마저 다리에 쥐가 나서 더는 뛸 수 없게 되어 4명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 이 모습을 본 구척장신팀의 전 감독이자 이제는 상대 ‘월드클래스’의 감독인 최진철은 팀의 에이스인 사오리를 조용히 경기장에서 빼고 경기를 이어갔지.

 

코로나로 참 많이 힘들고 더웠던 여름이었지만 스포츠가 있어서  잘 견디어 낸 것 같아. 한 여름에는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배구, 탁구 선수들의 선전이 우리를 덜 지치게 했고,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또 살아있는, 진짜 스포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야.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에 앉아있는 일이 많아서인지 운동은 정말 내 인생과 잘 맞지 않았어. 요가도 해보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웨이트 PT, 필라테스 레슨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운동을 하러 갈 때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불편하고 어색해.

 

여전히 운동에 대한 나의 마음은 비슷해. 하지만 올림픽과 골때녀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갖고 있었던 ‘운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 것 같아. 전에 운동은 살을 빼서 20, 30대 때의 그때로 살짝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다면 이제는 운동이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통해 나의 인내력을 알아보고, 나의 한계를 더듬어 보고, 궁극적으로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그런 소중한 순간일꺼라 생각이 들었어. 아마 골때녀에 출연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래서 그렇게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사력을 다해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특히 어제 경기에서는 축구를 20, 30년 넘게 한 ‘레전드’ 황선홍, 김병지, 이영표, 최진철, 최용수 감독들도 그들의 열정에 정말 큰 박수를 보내더라.

 

한 시인이 이런 시를 썼지.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깊어가는 가을, 자꾸 나약해지고, 자꾸 여려지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 한순간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자.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이윤영(21년차 작가,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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