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등·허벅지에 선명한 매질 흔적…“아프간에서 언론 자유는 끝났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1-09-10 19:00:00 수정 : 2021-09-10 16:03: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난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감금·폭행당한 뒤 풀려난 기자들이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탈레반은 자신들이 남성만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한 것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던 여성들에게 채찍과 몽둥이를 휘둘렀으며,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때리고 일부 감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언론의 자유는 끝났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미디어상에서 탈레반을 비판하지 못할 겁니다.”

 

아프간의 한 고위 언론인은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익명 인터뷰에서 “탈레반 고위 인사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론인들은 하위 탈레반 조직원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의 인권 시위를 취재하다 구금된 뒤 풀려난 언론인이 이번주 불과 이틀 새 적어도 14명에 달한다. 이들 중 최소 6명은 체포·구금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다. 영국 BBC와 함께 일하는 기자를 비롯해 여러 언론인은 시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불허됐다.

 

언론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진 사진을 통해 잘 드러났다. 일간지 ‘에틸라트 로즈’ 소속 두 기자는 카불에서 열린 시위를 취재하다 경찰서로 끌려가 곤봉, 전깃줄, 채찍 등으로 구타를 당했다. 등과 허리, 허벅지 등에는 매질을 당한 붉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들 중 한 명인 사진기자 네마툴라 나디크는 “그들은 ‘사진 촬영은 안 돼’라고 하더니 모든 카메라 기자를 체포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말했다. 경찰서로 끌려간 뒤에는 “탈레반 대원 한 명이 내 머리 위에 발을 올리더니 콘크리트 바닥에 짓눌렀다”며 “그들은 머리를 발로 찼다. 나는 여기서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묻는 나디크에게 돌아온 탈레반 대원의 답은 싸늘했다.

 

“참수되지 않는 것만 해도 행운인 줄 알아.”

지난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자국 문제에 개입하는 파키스탄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한 대원(왼쪽)이 이를 감시하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탈레반은 아프간 장악 이틀 만인 지난달 17일 이슬람 가치를 존중하는 선에서 아프간 내 언론 활동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취재 현장 상황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언론인에 대한 폭력은 특히 탈레반 내무부가 ‘승인받지 않은 시위는 금지된다’고 발표한 시점에 맞춰 이뤄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과 인터뷰한 언론인은 이에 대해 “미디어 속의 탈레반과 거리의 탈레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거리의 탈레반은 이해력이 없고 대단히 엄격하다. 탈레반 고위층의 말이 현장의 대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PJ의 스티븐 버틀러 아시아 프로그램 조정관은 탈레반을 향해 “(독립적 언론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자기 일을 하는 기자들을 때리고 감금하는 것을 중단하라”며 “언론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