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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듯 아프간 철군 중 테러 참사… ‘잊을 수 없는 상처’ 헤집다 [9·11테러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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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1 12:00:00 수정 : 2021-09-11 17: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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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미국인들

세계무역센터 공격당해 무너지던 날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30대 이상 93% 아주 뚜렷하게 기억
그 날의 충격·참상·공포 아직도 생생

20년 전보다 테러에 안전 응답 49%
역대 최저치인 2010년 48%에 근접
20년 전쟁 종식 동의 불구 결과 실망
IS-K 자살폭탄에 테러의 공포 떠올라
9·11 테러 20주년을 정확히 일주일 앞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진 자리 ‘그라운드 제로’ 주변 하늘은 화창하고, 평온했다. 나흘간의 미국 노동절 연휴에 맞춰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렸지만 쌍둥이빌딩이 자리했던 곳에 들어선 2개의 거대한 메모리얼 풀(Memorial pool)과 박물관으로 적당히 흩어져 혼잡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20년 전 3000명 가까이 사망한 전대미문의 테러도, 불과 이틀 전 150년 만에 최대 강수량으로 1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아이다의 뒤끝도 맑게 갠 하늘과 따뜻한 햇볕이 가린 듯 보였다.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9·11의 기억은 선명했고, 이후 20년을 이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혼란한 끄트머리가 20년 전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냈다. 아프간 수도 카불공항에서의 자살 폭탄테러는 9·11을 상기시켰다.

 

아프간 전쟁 종료를 두고는 시민들 의견이 엇갈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강조한 아프간 철군의 필요성은 다수가 동의했지만 ‘철수가 너무 빨랐다’는 의견과 ‘불가피했다’는 의견이 맞섰다.

 

20년 전쟁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기자가 만난 어느 누구도 성공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선명한 20년 전의 기억… 아프간 사태로 다시 공포

 

미네소타주에서 뉴욕을 방문했다는 스콧(60)과 제넬(60·여) 부부는 20년 전 9월 11일에 대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 스콧은 회사에, 제넬은 학교에서 사고를 접했던 것을 기억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뉴욕에 왔다는 티파니(30·여)도 당시를 기억했다. 티파니는 “할머니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던 기억이 난다”며 “계속 TV를 봤던 기억이 나고,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시카고 출신인 스티브(53)는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하던 도중 사람들이 귓속말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2일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미국 성인 1만3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0대 이상 미국인의 93%가 2001년 9월 11일 테러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고 답했다. 미국인에게 9·11은 잊을 수 없는 상처인 셈이다.

 

테러 위험이 20년 전보다 줄어들었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

 

스콧은 20년 전에 비해 테러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제넬은 테러의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비행기에서의 검색 등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만 했다.

 

9·11 당시 초등학생이었다는 다니엘(30·여)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가 최근 아프간 테러를 보면서 다시 테러에 대한 공포감이 생겼다”고, 크리스틴(33·여)은 “그때보다 안전해졌느냐는 질문에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각각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미국이 9·11 테러 이전보다 테러로부터 안전하다는 응답이 49%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역대 조사의 최저치인 2010년 48%보다 1%포인트 높은 수준이고, 오사마 빈 라덴이 살해된 뒤 4개월 뒤인 2011년 9월 64%보다는 15%포인트나 낮다.

◆바이든 철군 결정엔 이견… 20년 전쟁은 실패

 

아프간 전쟁의 끝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이었다. 20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미국의 20년 전쟁으로 쫓겨갔던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장악했고,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한 아프간인의 필사적 몸부림이 TV로 생중계됐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 폭탄테러로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민간이 170여명이 사망하면서 테러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관광을 왔다는 다나(79·여)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미국 군인이 철군해야 한다는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텍사스 출신의 애미(57·여)는 “아프간이나 북한은 그들의 관념이 있고, 바꿀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전쟁을 너무 빨리 끝냈고, 이렇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말했다.

 

댈러스에서 뉴욕을 찾은 던(47·여)도 “너무 빨리 철군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철군을 결정하긴 했지만 아프간에 군인을 보내고 전쟁을 치른 이유가 있는데 마무리를 안 했다“면서 “남은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혼란은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스턴에서 뉴욕을 찾았다는 론(57)은 “(철군의 과정을) 혼란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면서 “지금 끝내지 않았으면 전쟁이 더 길어졌을 것이다. 바이든은 그렇게 결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아이오와 출신의 부(48)는 “긴 전쟁이었고, 끝나야 하는 전쟁이었지만 아프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완성”이라고 말했다.

 

퓨리서치센터는 설문 응답자 69%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것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응답자의 89%는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그중 46%는 주요한 위협이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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