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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들고 돌아온 한강… “책 손에 쥐니 뭉클”

입력 : 2021-09-07 20:01:22 수정 : 2021-09-07 21: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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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7년 전 꾼 악몽에서 영감 얻어
학살 후 생존자들의 투쟁 담아
“소설 쓰는데 오랜 시간 걸려”
소설가 한강이 7일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문득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다.”(9쪽)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장편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직후였던 2014년 6월 말, 작가 한강은 이상한 꿈을 꿨다. 작품을 쓸 때에는 직접적인 폭력의 내용이던 꿈이 시간이 흐르면서 상징적으로 바뀌어가더니 결국 이 꿈에 이른 것이었다. 언젠가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기록했다.

여러 차례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잘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제주 바닷가에서 잠시 월세방 생활을 할 때 방을 내줬던 주인 할머니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짐을 들고 가야 될 곳이 있다며 도와 달라고 해서 함께 걸었지요. 골목길을 걷는데, 할머니가 멈춰서더니, 이 담이 4·3때 사람들이 총을 맞아서 죽었던 곳이여, 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으로 다가왔어요.”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맨부커 국제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5년 만에 신작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신작은 잡지사 기자 출신 작가 경하를 내세워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서사를 시적으로 담았다.

“제 마음에서 자라났던 꿈의 장면과 1990년대 할머니와 함께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만나면서 이 소설을 쓰는 게 가능했어요. 이 소설은 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책으로 손에 쥐어져서 감사하고 뭉클합니다.”

경하는 한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소설을 2014년 발표한 이후 악몽에 시달린다. 4년이 흘러 손가락을 다친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인선이 키우던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제주 4·3에 쓰러진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15년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어버리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슬픔을, 오빠의 행적을 찾아 수십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어머니 정심의 고요의 싸움을.

한 작가는 7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표제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며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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