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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류의 이야기는 곧 기체의 이야기”

입력 : 2021-08-28 02:00:00 수정 : 2021-08-27 2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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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카이사르 마지막 숨결
현재 우리가 숨 들이쉴 때도 마셔
대기, 4단계 과정 거쳐 지금 형태
산소 추가, 생명 탄생 결정적 영향
안전한 냉장고를 개발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과 레오 실라르드 박사가 1939년 함께 연구하고 있는 모습. 이들이 개발한 아인슈타인 냉장고는 움직이는 부품 없이 일정한 압력으로 작동하며 작동하기 위해 열원만 있으면 되는 흡수식 냉장고였다. 라이프지 캡처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샘 킨/이충호 옮김/해나무/2만원

 

‘지구의 이야기는 곧 기체 이야기다.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마지막으로 내쉰 숨결의 일부를 마시고 있다고 한다. 한때 역사적 인물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은 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몸속에 머물다 간다. 역사적 인물들뿐만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역사가 도래한 이래 나타난 온갖 종류의 기체 역시 우리가 머금은 공기에 포함돼 있다.

저자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불어올 때마다, 열기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마다, 라벤더나 박하, 심지어 위에 찬 가스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마다 우리는 그 역사에 흠뻑 젖는다고 말한다. 입 앞에 손을 갖다 대고 공기의 흐름을 느껴보면 한 모금의 숨결에 온 세계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에 대해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은 바로 이런 생각을 바꾸려는 목적으로 집필됐다. 순수한 공기는 색도 냄새도 없어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공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수많은 인간을 거치며 역사상 주요 사건들을 모두 지나온 기체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인류의 이야기가 곧 기체의 이야기인 이유다.

이 책은 공기의 발자취를 3부로 나누어 추적한다. 1부는 ‘공기의 탄생’이다. 지구의 대기가 생겨난 과정을 살펴보며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대기는 크게 4단계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이산화황과 황화수소 등 유독가스로 들끓는 대기로 시작해, 질소 중심의 대기를 거쳐, 산소 중심의 대기로 마무리된다. 대기에 산소가 추가되는 데는 생명의 탄생과 활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샘 킨/이충호 옮김/해나무/2만원

2부는 ‘공기의 이용’으로 공기와 인간의 관계를 다뤘다. 의학 역사상 최초로 가스 마취제를 성공적으로 시연한 불운한 사업가 호러스 웰스와 사기꾼 윌리엄 모턴. 아내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증기기관을 개선해 산업혁명을 추동했던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얻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악명을 떨쳐내기 위해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 그리고 열기구를 만들어 인류가 중력의 밧줄을 끊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이루게 한 몽골피에 형제까지 역사적·과학적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을 망라했다. 기체에 대한 연구는 인류가 질병과 근력, 중력이라는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3부는 ‘프런티어’라는 제목으로 공기의 현대사를 비춘다. 현대 인류는 공기를 새롭게 빚어내고 변모시켰다. 특히 지난 수십년 동안 대기의 조성은 인간으로 인해 뚜렷하게 변했는데, 바로 핵무기 때문이었다. 미 군부는 1945년 이래 핵실험을 수백 차례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방사성 원자들이 지구 위 모든 곳에 촘촘히 뿌려지며 대기의 조성을 변화시켰다. 이로 인해 공기 중 방사성 탄소-14의 양은 두 배로 늘어났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이전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책에는 공기의 현대사와 관련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냉장고의 치명적인 유독가스 때문에 가족 전체가 질식사했다는 기사를 접한 아인슈타인은 동료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와 함께 독성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냉장고 제조회사가 저렴한 프레온(염화불화탄소)을 냉매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장화에 실패했는데, 잘 알려져 있듯 프레온은 오존층에 구멍을 뚫는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인류가 아인슈타인의 냉장고에 투자했더라면 닥쳐올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매력적인 과학저술가로 불리는 저자 샘 킨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탈바꿈시킨다. 전작인 베스트셀러 ‘사라진 스푼’에 이어 이 책 역시 아마존 ‘베스트 논픽션’, 가디언 ‘최고의 과학책’ 등 출간과 동시에 찬사를 끌어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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