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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보상 없이 ‘무한 헌신’ 강요만 [코로나 최일선의 '사투']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입력 : 2021-08-15 18:01:37 수정 : 2021-08-16 07: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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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계 다다른 간호사들
환자 현황 따라 근무일정 수시 변경
개인 활동 자제한 채 쉬는 날도 대기
“일과 삶 사이 균형 붕괴된 지 오래”

40% “가장 필요한 지원은 보상” 응답
정신건강 관리할 전문의는 4명 불과
“언제든 분노·무력감 빠질 위험” 지적
오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환자들과 함께 생사의 기로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의료진과 지원인력들이다. 국내 확진자 첫 발생 후 1년7개월간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때로는 쓸쓸한 마지막 순간을 지킨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 속 우리에게 ‘일상’이란 단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최전선 의료진과 지원인력들도 지쳐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까워질수록 가족과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사회적 낙인’마저도 감내해야 했다. 세계일보는 5회에 걸쳐 그들을 짓누르는 무게와 고통,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았던 헌신을 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방호복을 입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쏟아지는 확진자와 장기화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장 의료진의 ‘일과 삶 사이 균형’은 이미 붕괴한 지 오래다.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근무하는 김현정(가명) 간호사는 “개인 활동을 굉장히 자제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우울함 같은 걸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간호사 경력 18년차로 신종플루·메르스 사태 등의 현장을 모두 지켰던 그이지만,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후유증을 피하긴 어려웠다.

코로나19 대응 인력들은 확진자 발생 현황에 따라 수시로 근무일정이 바뀌는 데다, 현장에서 부르면 언제든 달려나가야 한다. 정지현(가명) 수간호사는 “코로나 병동은 다음 날, 아니면 당일 밤에도 갑자기 근무 스케줄이 변경되니까 쉬는 날도 사실상 대기하고 있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가 전화를 받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가 냉풍기로 열기를 식히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의료진은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코로나19 환자나 그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지켜보면서 심적 고통을 느끼는 ‘대리 외상’을 겪기도 한다. 사태 초기 한 대학병원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한 곽정미(가명) 간호사는 “보통은 환자가 돌아가시면 보호자가 임종을 지키는데, 코로나 환자는 영안실 가실 때 잠깐,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시신을 덮는 방호포의 투명한 부분을 통해 (보호자가) 잠깐 얼굴만 보고 가셨다”면서 “손도 한 번 못 잡아드리고 영안실로 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늘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사직을 고려했었다는 신정현(가명) 간호사는 “환자들이 사망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불투명한 미래, 깊어지는 마음의 상처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사태에 현장 대응 인력들의 ‘마음의 병’도 점차 깊어지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최근까지 코로나19 의료진 등 재난 대응 인력 1437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검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 이상(52.3%)이 우울 증상을 보였다. 이 중 22.8%(327명)가 ‘고도’ 수준의 우울 증상을 겪었고, ‘관심’ 수준은 29.5%(424명)였다.

또 검사에 참여한 대응 인력 4명 중 1명(365명, 25.4%)은 ‘고도’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증상을 보였다. PTSD는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와 고통 등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앞서 센터가 지난해 6∼9월 코로나19 대응 인력 소진관리 프로그램 참여자 31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도 우울이 17.2%, 고도 PTSD가 16.3%였던 것과 비교하면 각각 5.6%p, 9.1%p 증가한 수치다. 고도 신체증상(7.8%→12.8%), 고도 불안증상(1.3%→4.2%), 고도 자살위험증상(2.2%→3.1%) 등의 수치도 증가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센터가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8∼2019년 재난 심리지원 종사자 등 재난 대응 인력 160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도 우울이 8.9%, 고도 PTSD가 10.1%였던 것과 대조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환경미화원이 전신 방호복을 입은 채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적절한 보상’ 없는 헌신 요구…심적 고통 키워

최전선 의료진의 체력은 점점 바닥나고 있지만 코로나19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헌신에 대한 보상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탓에 심리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이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상담을 해보면, ‘적절한 보상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부분들이 꽤 많다”면서 “(보상이란 건) 자신에 대한 가치, 자존감과 연결돼 있는데, 보상 체계와 상관없이 ‘너는 그런 걸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심적으로 더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진 의료진이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도 적절한 보상이나 인정 없이 헌신만을 요구한다면 언제든 분노나 절망감, 무력감 등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일보가 대한간호협회와 공동으로 지난 9∼13일 코로나19 현장 간호사 167명에게 ‘현장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에 대해 물은 결과, ‘적절한 보상’이 39.8%(145명, 중복 응답)로 가장 많았다. ‘인력충원’(33.5%), ‘업무 강도 완화’(17.1%), ‘근무시간 단축’(9.6%) 등이 뒤를 이었다. ‘병원은 의료진의 신체적·정신적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응답자 중 40.1%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잘 모르겠다’가 37.1%, ‘그렇다’는 응답은 22.8%에 그쳤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수간호사가 이날 받은 동료 간호사의 사직서를 들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의료진 소진 대응 인력도 부족…“정책적 관리 중요”

코로나19 대응 인력의 직무 스트레스 및 소진 예방·관리를 위해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소진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친 의료진을 제대로 관리하기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프로그램 관련 인력 34명 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4명(기간제 1명 포함), 정신건강전문요원은 1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의료진 상담과 동시에 코로나19 확진자 심리지원 등의 업무도 병행하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의 휴지통에 폐기된 주사약병 등이 모아져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이 전문의는 “코로나 의료진은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헌신하고 있는 만큼 정책적·체계적으로 소진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이웃이나 사회에서 지지하는 분위기도 의료진의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의료진이 적절한 휴식이나 보상,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소속 기관이나 관리자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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