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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만큼, 살아내는 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삶’을 보다

입력 : 2021-08-04 21:00:00 수정 : 2021-08-04 22: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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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자본주의의 적’ 펴낸 정지아 작가

특별한 욕망 없는 대학 친구 이야기
취재 온 기자와 벌어지는 온갖 소동
모친·사촌 이야기 바탕 상상력 더해
능청·익살스러운 문장 속에 인간미

“‘빨치산의 딸’ 통해 인정받으니 겁나
객관적 검증 받고 싶어 도전해 등단
한국 현대사 다룬 대하 장편 쓰고파”
구례 백운산 자락으로 귀향한 소설가 정지아씨가 8년 만에 자전적 사실과 재치 있는 허구로 풍성하게 변주한 네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더 따뜻해진 그는 작가의 말에선 정작 “…옳은 건 없다. 모르겠다”고 적었다.

마치 무대의 막이 짠, 하고 올라가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변사가 나와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가령 구어적이고 비어가 출몰하는 다음 대목이 특히 그렇다. “각설하고, 시작하겠다. 다만 한 가지 양해를 구한다. 자폐가족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흥미진진하지는 않다.”(10쪽)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자식놈이 스펙 운운하며 어학연수 보내달라고 떼를 쓰거나, 후배에게 승진이 밀렸거나, 마누라 친구의 잘난 남편과 비교당했거나, 이러저러하여 사는 게 엿 같을 때, 자폐가족을 떠올려주기 바란다.”(44쪽)

말투 역시 여간 능청스러운 게 아니었다. 엿 같을 때, 라니. 더구나 진지해 보이는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유머러스한 아이러니라니. 가령 다음 구절을 읽고도 픽픽 웃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지식인은 개뿔. 참고로 말하면….”(25쪽)

표제작 ‘자본주의의 적’에서 한참을 키득키득 웃다가 다음 단편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으로 넘어갔는데, 아니 글쎄, 첫 문장부터 포획돼 버렸다. “좆됐다. 문학박사 정지아는 전화를 끊으며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46쪽)

첫 문장이 무려 좆됐다, 라니. 작가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 정지아 작가였다. 남로당 전남도당 간부였던 아버지 정운창(작고)씨와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던 어머니 이옥남씨의 삶을 그린 ‘빨치산의 딸’을 쓴, 이름을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에서 따왔다는.

이미 타이트하게 정해진 일정과 업무가 이어지면서 그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못했고, 무심한 시간 속에 그 역시 잊혀졌다. 그러다가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그의 소설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의 소설 세계를 만나보고 싶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밀린 숙제하듯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의 작품 세계에 들어가자, 처음 그의 소설집으로 안내한, 구어적이고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의 근원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따뜻하고 예의바른 시선이 자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 아니 왜 인간을 따스하게 바라보게 된 것일까.

날이 푹푹 찌던 지난달 23일 이른 아침,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백운산 자락의 구례 무수내로 내려갔다. 백일홍이 피어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사진을 찍은 뒤 8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창비)를 펴낸 정 작가와 마주 앉았다.

‘자본주의의 적’은 어디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특별한 욕망이 없는 화자의 대학 친구 ‘현남’의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낸다.

―재밌게 읽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제 친구 얘기이긴 한데, 디테일은 실제와 다르다. 삶의 자세라든가 시험지 사건 등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많은 곳에서 과장되거나 가공됐다. 오래된, 절친한 친구인데, 원래 재밌다. 처음에는 글 쓸 생각을 못했다. 욕망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데, 사회주의도 욕망을 강제로 컨트롤하려다가 실패한 것 아닌가. 욕망이 없는 친구가 있어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가볍게 시작한 것이었다.”

다음 소설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은 한 중앙일간지 기자가 화자의 텃밭을 취재하러 오면서 송씨 아주머니를 부르는 등 벌어지는 갖가지 소동을 그린 코미디다.

―따뜻한 시각의 코미디다.

“웃긴 (나무 팻말) 이야기로부터 시작됐지만, 그 에피소드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허구다. 한동안 제 손님들에게 유머를 주는 코드 중 하나였다.(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손을 가리켜서 고개를 돌려보니 맙소사, 거실 기둥에 나무 팻말이 떡하니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어떤 기자는 작품 속에 나오는 소확행 기사가 진짜인 줄 알고 검색을 시도했다고 하더라. 그런 일 없다. 작품에선 모두 나이 먹은 사람들뿐이지만, 실제로 주인집만 빼고 거의 젊은 사람들이다. 송씨 아주머니 역시 없고.”

단편 ‘검은 방’은 99세의 노모가 검은 방에서 과거의 기억과 부모와 남편, 딸 등을 소환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남부군’ 정치지도원으로 1948년 말부터 1954년 초까지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어머니 이야기가 모티브로, 작가의 원점이 담긴 소설쯤 되겠다.

―소설은 실화인가.

“저의 옛날 소설에 가까운 작품 같다. 대부분 실화인데, 허구적 요소도 많이 섞여 있다. 엄마의 삶을 관통하는 팩트 몇 개에 나머지 3분의 2는 가짜를 집어넣었다. 엄마가 지금도 방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저를 제외한 부문은 상상한 것들이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섬망 증상’을 겪는 말기암 환자인 사촌 동생 기택이 어느 여름날 화자를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린 소설이다.

―소설이 참 따뜻하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아들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모티브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허구다. 구체적으로 사촌 동생이 조폭에 들어갔다가 나온 장면이나 노동자로 살았던 모습 등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상상을 부풀려 썼다.”

“작품에는 쓰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 단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손에 잡힐 듯이. “아마 그 장면 때문에 글을 쓴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의 아이가 다섯 살 때쯤 사촌들이 놀고 있는 고향 마을의 계곡에 갔다. 사촌들은 닭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그의 아이도 앉아 닭고기를 너무 맛있게 먹으니, 작은아버지 아들인 사촌 동생이 기다려보소, 하더니 한여름 뙤약볕을 뚫고 7, 8분이나 걸어서 닭 한 마리를 더 잡아왔다. 언니들이 닭을 다 먹고, 뭐 안주 없을까, 하니까 사촌 동생이 다시 기다려보소, 하더니 물고기를 잔뜩 잡아와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매운탕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아이가 물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아이를 물로 데리고 가서 한 시간 넘게 물놀이를 해줬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노동운동도 안 해, 계급의식도 없어, 술만 먹고 다녀, 그래서 한심하게 보다가, 이 세상에서 사람의 역할은 다른 것 아닌가, 하고 처음으로 사촌 동생을 아름답게 인식했던 것 같다. 사촌 동생이 죽기 일주일 전에 엄마한테 인사하러 왔더라. 술에 취해서 그냥 왔어, 라며 운전해서 왔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던가, 자기가 갖고 태어난 성격이나 성향이 있었겠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늘 남을 도와주면서 살았던 이런 게 인생 아닌가, 하고 생각해서 쓰게 됐다.”

요컨대, 정지아 소설들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는 질척거리는 삶의 경험과 예상치 못한 좌절, 실패들이 시간의 강을 따라 흐르고 쌓이면서 사유를 확장시키고 이해를 심화시켜온 결과라 하겠다.

1965년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을 펴냈고,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면서 등단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석·박사학위도 받았다.

―왜 다시 등단 절차를 밟은 것인지.

“사실 등단을 안 했어도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고, 몇 군데에 글도 싣는 등 이미 활동도 하고 있었다. 다만 ‘빨치산의 딸’로 갑자기 사회적으로 큰 인정을 받으면서 겁이 났다.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결코 좋은 소설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대학원 들어가서 글을 썼는데, 선생이 보더니, 이거 신춘 내봐라, 해서 냈다. 제 실력이 객관적인 관문을 통과할 만한 것인가 아닌가를 시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등단 이후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을, 청소년소설로 ‘숙자 언니’ ‘노구치 이야기’ 등을 펴냈다. 이 사이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 소설상 등을 수상했다.

인터뷰 끝자락에 앞으로 어떤 작가,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묻자, 그는 ‘총체성’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개항에서 오늘날까지를 망라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요. 한국의 근대가 어디에서 어떻게 열렸고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총체적으로….” 어쩌면 그건 마구처럼 시대에 던져진 자신의 삶이 익고 익어서 던져준 숙제인지도. 염천의 백운산 자락 무수내에서 정지아의 삶과 문학은 그렇게 더 따뜻하고 더 깊어지고 있었다, “살아온 만큼, 그리고 살아내는 만큼”.


구례=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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