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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따르지만 독창적 화풍… “현대적 계승은 무거운 과제”

입력 : 2021-08-01 19:50:47 수정 : 2021-08-02 15: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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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의 거장 임농 하철경 화백

남화의 산 증인 남농 제자로 입문
45년간 남종산수화의 명맥 이어와
“스승의 품격 이어받아 진화시켜야”

4일부터 인사아트프라자서 전시회
‘심추’ ‘변산의 겨울바다’ 등 작품 선봬
진경산수를 유려한 필치로 풀어내
임농 하철경 화백은 남농 허건의 수제자로 남종산수화의 맥을 잇는 한국수묵화의 보기 드문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이란 화업은 여전히 무거운 과제”라고 말한다.

“남농 선생님의 문하에 입문할 당시 선생님 연세가 고희이셨는데 제가 어느덧 고희를 앞두고 여는 전시회라 감회가 남달라요. 화업을 시작한 이후 64번째 갖는 개인전입니다. 남농 선생님의 문하에 입문한 지 4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은 여전히 무거운 과제입니다.”

임농 하철경 화백이 지난달 30일 전시회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스승 남농 허건(1907~1987)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남농은 조선 후기의 저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유(許維)를 할아버지,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아버지로 하는 3대째의 화맥을 이어온 조선 후기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남화역사의 산 증인이다. 하 화백은 1977년 남농의 문하생으로 남종화에 입문해 지금까지 남종산수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창적인 화풍으로 한국화를 계승·발전시켜왔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하철경作 ‘산길’

그가 4일부터 10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전시회를 연다. ‘심추’, ‘송광사의 봄’, ‘봄’, ‘변산의 겨울바다', ‘대흥사의 봄’, ‘내소사’, ‘만추’ ‘여름날’, ‘하일(夏日)’, ‘산길’, ‘변산의 겨울바다', ‘설악산’, ‘대흥사의 가을2’ 등 진경산수를 유려한 필치와 거칠고 부드러운 붓질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철경作 ‘내소사’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수묵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추억의 옛 고향을 순례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친근하고 평온하며 향토적이다. 앙상한 나무를 전면에 배치하여 자연의 쓸쓸함을 주는가 하면, 풍요로운 나뭇잎으로 자연의 풍성함을 넉넉하게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진부한 수묵화의 세계에만 빠지지 않고 단순함과 간결미로 대작에서 볼 수 없는 여백의 미를 극도로 살려내고 있다. 과감하게 생략한 섬과 바닷가의 풍광, 나무와 어울린 바위 풍경, 그대로 산사에서 풍기는 고졸한 풍경들은 자연의 한없는 조화로움이 드러난다.

 

하철경作 ‘심추’

주요 작품 중 ‘심추’는 강원도 동해 무릉계곡 등산로 옆 산사의 늦가을 단풍을 소재로 작품화한 것이다. 요사채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서정적이다. 향토적이고 향수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우리 고유의 평화로운 정경이다. ‘여름날의 산행’은 여름철 계곡에서 산행하다 잠시 휴식하고 있는 이들을 소재로 했다. 수묵으로 처리한 이 작품은 율동적인 필선과 필묵이 동양화에서 으뜸으로 치는 ‘기운생동’을 보여주고 있다.

하철경作 ‘대흥사의 봄’

‘변산의 겨울’은 세차게 부는 변산의 겨울바다를 담았다. 운필의 빠른 기세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와 거세게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낚시하는 전경이다. 변산바다의 현장성과 금방 쏟아지는 눈이 연상된다. 평화로운 산사의 이른 아침을 담은 ‘대흥사의 봄’은 하얀 벚꽃들과 불그스레한 꽃들이 봄의 향연이 돋보인다. 일획과 일필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풍부하게 묘사해 서정적인 시취(詩趣)의 산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전통 산수화가 지니는 정확한 점묘와 극도의 세묘, 그리고 억제된 힘이 드러난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그의 작품에 대해 “본질적으로 남농의 흔적이 강렬하게 느껴지지만 중기 이후 그는 스승의 화풍에서 머물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과거의 고루한 수묵작업에서 탈피하여, 회화의 일품을 중시하는 품격과 격조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그만의 독창적 세계관이 싹트기 시작했다. 산수화의 관념이 아니라 자연의 조화와 균형, 압축과 생략의 아름다운 수묵화의 본질을 그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스승님이 그립다”는 하 화백은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레슨비를 받지 않았다. 당신께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빈한해 추운 겨울 남의 집 마루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왼쪽 발목에 종기가 났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왼쪽 무릎 밑 다리를 절단해 장애를 갖게 됐다. 1970년대 들어 그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전국에서 선생님의 그림을 사려고 목포작업실에 진을 칠 정도였다. 당신이 가난한 시절을 보냈기에 경제력이 생기자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셨다”고 스승을 회고했다.

“현대미술에서도 남종화 정신은 살리고 이어져야 합니다. 시정적(詩情的)이며 사의적(寫意的)인 품격은 이어받아 오늘의 미술로 진화시켜야 한다.” 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은 그가 지켜온 화업의 영원한 과제다. 남농의 마지막 제자로 불리는 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염천의 계절 한가운데서 전시회를 갖는 이유다.

하 화백은 지난 6월 고향 진도군 군립미술관에 150점의 작품을 기증하는 서약식을 했다. 남농의 문하에서 그린 작품과 그의 초중기 작품을 엄선해 미술관에 기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후학을 위해 선행을 배푸신 스승님의 뜻을 계승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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