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물을 달라”… 이란, 극심한 가뭄에 항의시위 격화

입력 : 2021-07-26 19:43:30 수정 : 2021-07-26 21:50: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후제스탄주서 몇 주째 계속… 전국 확산

시민들 거리로 나서자 30개 도시도 가세
시위 중 3명 숨져… 반정부매체 “10명 사망”
50년 만의 최악 가뭄… 2021년 강수량 평년 52%
농·축산 등 물 부족… 수력발전 중단 정전도
지도부 긴장… 하메네이, 단수 등 조사 촉구

중동·阿와 함께 기후위기로 지구촌 신음
美서부·加·濠 등에선 가뭄 탓 산불 위세
이란의 물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남서부 후제스탄주의 한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SNS 캡처

“우린 목마르다. 물을 달라, 물을 달라!”

이란 남서부 후제스탄주에선 목마름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몇 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번지기 시작하더니 이달 들어 거리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3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나 반정부 성향의 매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15일 이후 약 열흘간 10명이 숨지고 102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후제스탄은 이란 내 석유의 80%, 천연가스 60%가 매장된 부유한 지역으로 꼽힌다. 사탕수수와 밀, 보리가 자라는 광활한 농지를 자랑하기도 했던 이곳 주민들이 길거리로 나선 건 ‘물’ 때문이다.

이란은 5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올해 강수량이 평년의 52% 수준으로 떨어졌다. 500만 주민이 단수로 고통받고 농업, 축산업 등도 줄줄이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수력발전까지 전면 중단되면서 수도 테헤란 등 주요 도시는 몇 주째 순환정전(대규모 정전을 예방하기 위해 일부러 지역별로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 시행 중이다.

후제스탄은 넉넉한 자원 덕에 경제적 형편은 비교적 낫지만 아랍 소수민족이 많아 반정부 시위가 자주 일어났다. 이번 시위 초기만 해도 물은 표면적 이유일 뿐 뿌리 깊은 피해의식이 표출된 ‘지역 이슈’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테헤란, 마슈하드(이란 제2 도시)를 포함해 약 30개 도시에서 후제스탄을 지지하는 시위가 잇따르며 이란 지도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란 남부 단수 항의 시위.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 제공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물 부족이 심화한 건 정책 실패도 작용했다고 말한다. 이란의 유명한 경제학자 사데그 알후세이니는 최근 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정부가 각종 보조금으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전기 낭비, 물 낭비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요금을 인상하기도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 때부터 부과된 고강도 경제 제재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까지 덮친 상황에서 공공요금을 올리는 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2019년 11월 휘발유 가격 50% 인상을 단행했다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300여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물 시위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 22일 이례적으로 “그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료들의 노력이 미약했다”며 “이른 시일 안에 후제스탄 단수 문제를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뉴욕타임스는 “곧 취임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당선자는 저항 세력에 무자비하기로 유명하다”며 “그가 물 부족이라는 원초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일반 시민들의 불만에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이 쏠린다”고 전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뉴시스

물 시위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서 가뭄은 더 이상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서부 지역은 수백만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고 캐나다와 러시아, 호주 등지에서도 가뭄과 이로 인한 산불이 갈수록 위세를 더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건조한 지역과 습윤한 지역, 건기와 우기 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게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전망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