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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뭐길래… 왜 인류는 열광하는가

입력 : 2021-07-24 03:00:00 수정 : 2021-07-23 19: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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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키워드로 스포츠 기원과 발전 조명
고대 올림피아 제전은 종교의식이 출발점
르네상스 거치며 인문주의적 동경 일으켜
쿠베르탱의 올림피아 경기 부활에 영감 줘

근세 들어 스포츠 본격 제도·전문·상업화
군주·귀족들도 열광… 전용경기장 등 설치
사범·경기 안내서·스포츠 광고 속속 등장
인류 사로잡은 스포츠 유구한 역사 한눈에
올림픽은 최고, 최대의 세계 축제로서 스포츠 첨단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간 ‘스포츠의 탄생’은 올림픽을 키워드로 고대 이래 스포츠의 변화, 발전 과정을 풍부한 실례를 통해 전하는 책이다. 사진은 도쿄올림픽의 양궁, 축구 경기 모습. 연합뉴스

스포츠의 탄생/볼프강 베링거/강영옥 옮김/까치/2만5000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와중인 데다 준비 부족, 운영 미숙을 드러내고 있는 도쿄올림픽이 23일 개막했다. 일찍부터 ‘잘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을 샀지만 그래도 ‘인류의 대제전’이란 위상으로 세계인을 들뜨게 한다. 그 속에서 우리들은 능력을 극대화한 신체를 바라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쏟았던 선수 노고에 경의를 보낸다. 그리고 최고, 최대의 축제를 통해 현대 스포츠의 가장 첨단화된 형태를 확인한다.

독일 역사학자인 볼프강 베링거는 올림픽이란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스포츠 역사를 더듬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즐기는 스포츠의 기원과 발전을 과정을 더듬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고대 올림픽과 19세기 이후 근대 스포츠의 도약 사이를 이어주는 기능을 담당한 시대”에 확연해지는 스포츠 발전 과정에 주목한다.

볼프강 베링거/강영옥 옮김/까치/2만5000원

고대 이래 스포츠는 종교와 관련이 깊었다. 그리스, 로마 경기장에는 신상(神像)이 많았고, 중세까지도 대규모 경기는 특정 신을 숭배하는 축일에 개최됐다. 그러나 종교 의식과는 상관없이 스포츠만을 목적으로 열리는 행사가 점점 많아졌고, 급기야는 현대 스포츠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특징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기 스포츠 부상은 “스포츠의 발달 정도를 판단하는 지표”다. 프랑스 파리는 14세기에 이미 ‘테니스의 수도’라고 불렸고, 지금의 배구와 비슷한 ‘팔로네’는 16세기에 독일,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들은 메디치 가문 후원 아래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스포츠 인기는 그것에 열광하는 군주들 모습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젊은 시절 열정적인 테니스 선수였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3세, 직접 경기에 뛰기도 한 루돌프 2세가 대표적이다. 또 영국 헨리 8세는 프랑스 프랑수아 1세와 직접 레슬링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저자는 “2m가 넘는 거구에 쉽게 쓰러질 리 없는 프랑수아 1세는 헨리 8세의 기습 공격을 민첩하게 막아냈고, 그를 넘어뜨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그때 경기를 소개했다. 각국 군주들은 “종교적인 열성과 특정 종목에 대한 편파적인 후원으로부터 스포츠를 보호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했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스포츠 저변이 넓어지면서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특성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용 경기장 설립은 스포츠 제도화의 첫걸음이었다. 17세기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는 달리기, 도약, 볼링 등을 즐길 수 있는 여가 시설이 설치됐다. 이런 초기 형태가 좀 더 발전해 등장한 것이 스포츠 전용 건물이다. 구기 스포츠 전용관이 각 지역 귀족의 성에 설치되었다. 그것은 “명성에 대한 갈망, 스포츠에 대한 열정, 시대정신의 수용이었으며”, 상업적인 동기의 작동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대학교 도시와 기사 아카데미에서 부유한 학생들을 유치하려면 실내 체육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 초기에 이르러 스포츠 특성 중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에선 전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승마 교사, 무예 교사, 펜싱 사범 등이 등장했고, 16세기에는 출장을 다니면서 사범이자 마상 시합 파트너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가들이 나타났다. 심판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고, 스포츠 안내서도 발행됐다. 1598년 교황이 파견한 수행원 보고에 의하면 파리에는 250개의 구기 경기장에서 약 7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포츠 상업화도 자연스럽게 진척됐다. 오늘날 가장 세련된 광고 형태로 자리잡은 스포츠 광고는 1699년에 처음 등장했다. 영국 런던의 클러컨웰 지역의 호클리 인 더 홀에 새로 건축된 사설 스포츠 경기장인 베어가든의 광고였다. 상업화와 함께 스타 선수도 탄생했는데 저자는 “권투 선수 제임스 피그는 격투 스포츠 분야에서 진정한 스타가 배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피그는 1714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처음으로 신문 기사에 언급되었고, 이런 명성을 활용해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일궜다.

서구에서 스포츠의 기원은 말할 것도 없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이다.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오래된 그 옛날에 대한 관심 또한 상승했고 올림피아 유적지 발견과 발굴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저자는 이를 “유럽의 범헬레니즘, 즉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광은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등장한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인문주의적인 동경”이라고 분석했다. 스포츠와 관련된 성공적인 발굴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림피아를 향한 관심은 활기를 띠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쿠베르탱은 올림피아 경기를 부활시키겠다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쿠베르탱은 이렇게 썼다. “국제 스포츠가 세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려는 특히 이 시점에, 올림픽의 부활은 고대의 찬란함을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충분히 유익한 아이디어리라.”

저자는 서문에 “우리는 역사 수업이나 대학교의 사학 공부에서도 스포츠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스포츠 역사에 관해서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교육 정책가와 역사학의 선호를 말해줄 뿐”이라고 썼다. 이런 지적처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뜨거우나 정작 그것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고대 이래 서구에서 진행된 스포츠의 변화,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풍부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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