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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 아기 못 구한 엄마 ‘무죄’ 판결에 ‘엄벌 진정서’ 빗발

입력 : 2021-07-19 20:48:29 수정 : 2021-07-19 20: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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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도덕적 비난 여지 있어도 법적 책임 묻기 어려워”
당시 A씨가 거주한 서울 은평구 녹번동 다세대주택. 3층 짜리 주택 2층에서 불이나 A씨의 아들 B군이 숨졌다. 연합뉴스

 

불이 난 집에서 아이를 구하지 못한 20대 엄마를 엄벌해달라는 진정서가 항소심 법원에 빗발치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최성보 정현미 부장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24·여) 씨를 엄벌해달라는 진정서 200여 건을 접수했다.

 

진정인들은 항소심 결심 공판이 끝난 이후인 지난달 23일부터 진정서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날 하루 동안 9건의 진정서가 법원에 접수됐다.

 

A씨의 사건 항소심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사연이 알려지면서 엄벌을 탄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지난해 4월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불이 처음 시작된 안방에 있던 아들 B군을 즉시 데리고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집을 나와 B군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과 재판부 등에 따르면 A씨는 화재 당일 안방 침대에 아들을 혼자 재워 놓고 전기장판을 켜 놓은 뒤, 안방과 붙어 있던 작은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불은 안방의 전기장판에서 시작됐다.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A씨는 안방 문을 열었고, 연기가 들어찬 방 안 침대에 아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방에 들어가는 대신 현관문부터 열어 집 안에 차 있던 연기를 빠져나가게 해야겠다고 판단했지만, 그가 현관문을 열고 다시 아들이 있는 안방으로 향하는 사이 불길과 연기는 더 거세졌다.

 

이에 밖에서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한 A씨는 1층까지 내려가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사이 불길은 더 번져 A씨도, 행인도 집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B군은 결국 숨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아이를 구할 수 있는데도 내버려 뒀다”며 A씨에게 책임을 물어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는 A씨가 화재 당시 적절히 행동했는지, 아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팽팽히 맞섰다. 

 

검찰은 “화재 시뮬레이션 결과 현관문을 개방했을 때 가시거리가 30m 정도로 시야가 양호했고, 피해자가 위치했던 침대 모서리와 방문 앞 온도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며 A씨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화재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거리는 2m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음 도망치는 게 일반적임에도 혼자 대피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반면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잘못 판단해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유기했다거나 유기할 의사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 측은 “안방 문을 열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연기가 확 밀려오니 당황해 일단 현관문부터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입과 코를 옷깃으로 막고 다시 방으로 갔을 때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연기가 많아 1층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행동에 과실이 있었다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유기 의사가 있었다면 현관문을 열어 연기를 빼 보려 하거나 119에 신고하고 행인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행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측 주장과 증거를 검토한 법원은 “화재 당시 아기를 내버려 뒀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건물 외부에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화재 발생 이후 안방 창문을 통해 연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다가 어느 순간 더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안방 문과 현관문을 열면서 창문 밖으로 새어나갈 공기가 거실 쪽으로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비록 피고인이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 손잡이가 뜨겁지 않았고 피해자의 얼굴이 보였다 하더라도, 별다른 망설임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손쉽게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며 “사람에 따라서는 도덕적 비난을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무죄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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