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조금씩 앞으로 붙읍시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한 남성이 앞을 향해 소리쳤다. 긴 시간 기다렸지만 한참 남은 대기줄에 격앙된 목소리였다. 앞사람과 거리를 두던 이들은 멋쩍은 듯 간격을 좁혔다. 하지만 간격을 좁혀도 대기줄은 300m 가까이 길게 이어졌다.

선별검사소가 북새통을 이룬 것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발 집단감염의 여파였다. 백화점에서 확진자가 이어지자 방역당국이 2주 동안의 방문자 모두에게 검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검사를 받은 방문자는 1만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며칠간 강남 지역 선별검사소 앞에는 검사를 받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긴 대기줄이 담긴 사진이 수많은 언론에 보도됐다.
이날 이곳을 찾은 것은 취재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지친 표정의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줄에 서 있었다. 백화점 방문자 1만5000여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검사를 위해 기다린 시간은 3시간. 더운 날씨에 나도 모르게 짜증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의료진을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래 기다리셔서 힘드셨죠.” 나보다 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료진이 건네는 위로에 내 감정은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긴 대기시간은 안일했던 내 행동이 초래한 결과로 여겨졌다.
몇달 전만 해도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사적인 약속은 거의 잡지 않았다. 그러나 7월이 다가오면서 나도 모르게 해이해졌던 것 같다. 길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쳐 있던 내게 ‘7월이 되면 사적모임 제한은 6인까지, 영업제한시간은 자정까지로 늘어날 것’이란 방역당국의 말은 달콤하게만 들렸다. 오래 못 보던 지인을 만나고, 휴일엔 백화점을 방문했다. 별다른 불안감은 없었다. 결국 이런 안일함이 나를 선별검사소로 이끌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선별검사소에서 봤던 의료진의 지친 표정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섣부른 기대감이 그들을 힘들게 한 것 같았다. 나처럼 안일해진 이들이 많았던 것일까. 최근 코로나19 상황은 연일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던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다.
최근 또다시 선별검사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취재를 위해서였다. 폭증한 검사대기자와 폭염이란 이중고를 겪는 의료진은 “더운 날씨에 방역 장갑을 끼고 일하다 보니 손가락 껍질이 다 벗겨졌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적용 후 한산해진 밤거리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버티기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의료진은 코로나19 전선에서, 자영업자들은 생계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었다.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일상생활의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나 하나쯤이야, 이번 한 번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무더위 속에서 방역복을 입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안일했던 마음을 거두고 다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나부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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