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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카페인을 직관한 괴테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1-07-17 15:00:00 수정 : 2021-07-17 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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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테이스터가 스푼으로 떠 입안으로 역분사하면서 향미를 평가하는 모습. 좋은 커피를 마시면 향미와 관련한 이미지와 색상이 떠오른다.

커피를 마시며 맛의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커피테이스터들의 행복이다. 한 밭에서 자란 커피라도 땅의 경사도나 그늘이 드리워지는 시간에 따라 향미의 특색이 달라진다. 이런 미세한 차이는 실험적 도구로 입증하기 힘들다. 인간의 관능으로 커피의 맛을 감각하고 지각하고 인지해서 감성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직 신의 영역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마음의 눈으로 커피 향미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와 색을 보는 것이다. 색(color)은 곧 맛(taste)이기 때문이다.

카페인의 존재는 커피의 색으로 인해 꼬리를 밟혔다. 1819년 칠순에 접어든 괴테는 한 카페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왜 요즘 젊은이들은 저 검은 음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커피 속에는 분명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 괴테는 검은색을 보고 카페인의 존재를 직관했다. 파우스트 1부를 탈고한 지 어느덧 11년. 후속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던 괴테는 ‘악마의 유혹’이란 도처에 깔렸다고 걱정했다. 검은색이 주는 정서적 두려움과 영악한 기운이 갈수록 괴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스물다섯살 젊은 화학자 프리드리히 페르난드 룽게에게 커피에 들어 있는 강한 유혹의 근원을 밝혀줄 것을 명령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 괴테에게 이런 부탁을 받은 룽게는 만사를 제쳐 두고 연구에 매달려 수개월 만에 커피에서 흰색 물질을 추출했다. 카페인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다. 괴테의 관점에서 카페인은 검은 커피 속의 흰색 악마였다. 카페인은 메틸크산틴(methylxanthine) 계열에 속하는 알칼로이드로서, 한 분자에 질소 원자를 4개나 가지고 있는 흰색 결정체이다. 카페인이 검은색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커피의 고유한 색상 때문이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검은 빛깔을 내는 멜라노이딘이 생성된다. 간장이 커피와 비슷한 색상을 띠는 것 역시 숙성되는 과정에서 이 색소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카페인(caffeine)은 커피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alkaloid)라는 의미이다.

카페인이 인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괴테의 시대에는 알 수 없었다. 괴테의 직관에 따라 카페인이 인간의 정신에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카페인이 발견된 뒤 65년이 지난 1884년에 독일의 헤르만 에밀 피셔에 의해 카페인의 화학구조가 밝혀지고, 카페인이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모양이 비슷한 덕분에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괴테가 검은색을 통해 카페인을 직관한 사연은 커피애호가들에게 색과 맛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색을 감지하는 시각이나 맛을 느끼는 미각은 모두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를 자극하는 같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에서 진한 장미 향과 함께 붉은색이 떠오르고, 콜롬비아 워시드 커피에서 투명하다시피 한 주홍빛과 패션 푸르츠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이유는 괴테의 색채론으로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토마토 꼭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동감과 함께 진녹색을 떠올릴 때 케냐 커피가 그려지는 것은 결코 미스터리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커피 향미를 감각하고 지각함으로써 기억을 끌어내고, 그 과정을 통해 감성과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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