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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2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민낯 (上)…“빠XX 했냐” 성희롱 신고 후 고소장 날라와

입력 : 2021-07-02 16:58:45 수정 : 2021-07-05 16: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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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에도 사용자 측이 괴롭힘 신고 외 다른 이유로 피해자에 불이익을 주더라도 처벌 못하는 현실은 여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오는 16일로 시행 2년을 맞이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그럼에도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는 적잖다. 오죽했으면 피해자들이 입을 모아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라 했을까. 실제로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1277명 중 54.6%가 ‘괴롭힘을 당해도 속으로만 삭인다’고 답했는데,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71.7%),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54.4%·이상 복수응답 기준)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괴롭힘 금지법의 허점을 파헤쳐 본다. 

 

“직장에서 성희롱, 괴롭힘을 당해도 가만히 있으세요. 결국 돌아오는 건 형사 고소, 해고 권고뿐입니다”

 

경기 부천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팀장 박모씨(48)는 2019년부터 이어진 직장 내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까지 떠올릴 정도라고 2일 힘겹게 입을 뗐다. ‘살기 위해’ 용기를 내서 한 괴롭힘 신고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고 토로했다.

 

회사 대표의 괴롭힘이 심해 모 임원에게 문제를 제기한 게 ‘지옥’의 시작이었다고 박 팀장은 떠올렸다.

 

“그 임원과 사귀냐”, “빠XX를 같이 하러 다녔냐” 등 성희롱 발언을 시작으로 대표의 ‘보복’은 일방적인 보직 해임과 부당한 전보 발령까지 이어졌다. 구매팀 경력만 20년 가까이 되는 박 팀장은 결국 다른 팀 하급 직원이 맡던 업무로 발령 났다. 책임자로 일하던 팀이 해체됐다는 게 사측이 내민 인사 명분이었다.

 

허드렛일에 가까운 잡무와 엄청난 업무량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던 박 팀장은 결국 우울증과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등으로 6개월의 치료 진단을 받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관할 지방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고 노동청에 진정 신고를 넣었지만 돌아온 건 회사 측의 형사 고소와 징계위원회 회부였다고 그는 하소연한다. 입사 이래 사용했던 영수증을 전수 조사한 사측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고, 등 떠밀리듯 강제로 휴직한 박 팀장은 복귀를 위해 회사를 상대로 홀로 투쟁 중이다.

 

박 팀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도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가 괴롭힘 해결의 주체인 탓에 사업주나 사업 경영 담당자가 가해자일 때는 근로기준법에 의한 적절한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19년 7월16일부터 시행된 괴롭힘 금지법은 애초 피해자가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사측이 불이익을 줄 때만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었다. 뒤늦게 지난 3월 국회는 괴롭힘이 발생했는데도 사측이 조사·조치 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괴롭힘 가해자가 사장이나 사장의 친인척이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오는 10월14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박 팀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적절한 조치 등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를 고용한 사업주는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아가 사용자 측이 괴롭힘 신고 외 다른 이유로 피해자에 불이익을 주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현실은 여전하다.

 

박 팀장의 사건을 맡은 공병수 공인노무사는 “실은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줬으면서도 사측은 표면상 다른 징계 사유를 내세운다”며 “박 팀장의 영수증을 전수 조사해 배임죄로 고소한 조치 등이 일례로, 사측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근이 잦은 업무 수행 시 배임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던 사측이 갑자기 문제로 삼아 형사 고소를 한 것”이라며 “배임죄가 인정되면 이직 시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니 이를 악용해 사측에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박모씨의 진정사건을 조사하고 사용자 측에 통지한 ‘노동관계법 위반사항 시정지시’ 공문. 박씨 제공

 

이에 반해 사측은 “박씨가 신고한 괴롭힘 사례를 조사하다 지난 3년간 사적으로 이용한 내역을 발견해 고소한 것뿐”이라며 “이미 노동부에서 권고한 시정 조치는 모두 완료했다”고 반박했다.

 

박 팀장도 반박에 나섰다.

 

그는 “노동청에서 개선 조치를 지도하고, 행위자를 징계토록 했다는데 이에 관해 어떤 내용도 전달받은 게 없다”며 “피해자가 정보 공개를 요청한 뒤에야 내용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과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박 팀장은 지난달 24일 회사의 징계위원회에서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그는 “반복되는 징계위 회부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형사 고소 탓에 이제 정말 놓고 싶은 생각뿐”이라며 “최근 네이버 직원의 사망 사건 등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왜 홀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이제야 사무치게 공감이 간다”고 울음을 삼켰다.

 

아울러 “저도 만약 앞선 피해자들과 같은 선택을 한다면 더 많은 관심,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요”라며 말을 흐렸다.


김수연 인턴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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