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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중국 최초의 ‘평등조약’: 벌링게임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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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27 23:24:42 수정 : 2021-06-27 23: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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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6월에 미·중 양국이 체결한 일명 ‘벌링게임 조약’은 중국의 사상 첫 ‘평등조약’이다. 1842년 아편전쟁으로 체결된 ‘남경조약’ 이후 중국은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조약의 조항이 서구에 일방적으로 유리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했다. 하지만 ‘벌링게임 조약’의 차이점은 당시 미국의 대중 ‘협력정책’의 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데 있다.

실질적으로 배상금, 세관의 운영 등에서 동 조약도 1858년 ‘천진조약’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8개 항목의 신설로 ‘협력정책’의 정신을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서구와 대등한 입장에서 공평한 외교를 통해 중국의 주권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신설조항으로 중국 영토 주권, 중국 내에서의 무역 관할권, 영사관 신설, 종교와 거주 및 여행의 자유, 상호 유학과 교육 허용, 중국 이민과 미국 화교의 인권 등이 보장됐다. 그 결과 미국 선교사, 선교사가 세운 학교의 중국인 입학생, 중국이민자와 미국 무역선의 수가 대폭 증가했다.

존슨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과 빅토리아 영국 여왕 출처:위키피디아

벌링게임은 또 한 가지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 ‘협력정책’ 정신, 즉 상기한 신설조항을 서구 열강이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방문국의 통치자를 접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독일의 비스마르크,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를 직접 설득한 결과다. 이 밖에 북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도 이런 노력은 지속되었다.

1870년 2월 러시아 방문 도중 벌링게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청 조정은 비통해했다. 사절단은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 그해 10월에 귀국했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또다시 평등하고 공정한 합의를 모색 중이다. 2020년 1차 무역협정 타결 이후 협상이 경색국면에 빠졌지만 협정의 연속성과 추가항목을 아우르는 협상 지략이 요구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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