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조주빈 “악마의 삶 멈춰줘서 감사”
‘세 모녀 살해’ 김태현 “숨 쉬는 것도 죄책감”
“‘의도적이지 않은 우연한 범행’ 부각하려는 의도
사회 탓으로 돌리려는 ‘법정투쟁 예비단계’ 의심”
스스로 마스크 벗고 고개 들며 거리낌 없는 흉악범
얼굴 공개 현장이 하고 싶은 말 하는 ‘변명 자리’로
피해자 모욕감 느낄수도...다른 흉악범에 학습효과

“더 심해지기 전에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반성인가, 범죄 합리화를 위한 변명인가.
미성년자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 등으로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최찬욱(26)은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내리깔며 카메라를 피하던 피의자들의 모습과 다른 그의 태도는 당혹감과 공분을 자아냈다.
그가 마치 위험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처럼 ‘감사 인사’를 한 것은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범행 동기를 사회 탓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앞선 흉악범 얼굴 공개 자리에서 최씨와 유사한 발언을 했던 이들로 인한 ‘학습 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얼굴 공개 자리는 범죄자의 ‘변명 자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남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등의 혐의(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전날 검찰에 구속송치됐다. 재범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 등으로 신상공개가 결정돼 최씨는 검찰 송치 전 언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5년 전에 우연하게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와 주인 놀이를 하는 걸 보고 호기심으로 (범행을) 시작했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더 심해지기 전에 어른들께서 구해주셔서 성실하게 수사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그 점은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당초 마스크와 안경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섰던 최씨는 심경을 밝히던 도중 스스로 안경과 마스크를 벗어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도록 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저 같은 사람도 존중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며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한 뒤 호송차에 탑승했다.
이 같은 모습이 중계된 직후 온라인상에선 그의 “감사하다”는 발언 및 떳떳하게 카메라 앞에 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두고 공분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 “최찬욱, 얼굴 공개자리서 ‘의도적이지 않은 우연한 범행’ 변명한 것”
전문가들은 최씨 발언이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의도적이지 않은 우연한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범죄의 기본적인 유발 요인·동기 등에 대해 사회 탓을 하는 것”이라며 “그 (얼굴 공개) 자리를 이용해 일종의 ‘법정 투쟁 예비단계’에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씨는) 그냥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했다”면서 “피해자에 대해 잘못했다는 건 간단하게 (말하고) 끝내고, ‘나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등 마치 인질로 잡혀 있다가 구출을 당한 사람이 돌아와서 기자회견 하는 것 같이 말하면서 자신과 그 범죄를 분리시켜버렸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최씨가) ‘우연히’라고 말한 건 자신이 원래 그러한 범행을 하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우연히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라며 “‘노예 주인 놀이’라는 것과 이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돌려버렸다”고 부연했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26) 역시 자신의 얼굴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자리에서 최씨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조씨는 지난해 3월 검찰 송치 전 언론 카메라 앞에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자신과 범행을 따로 분리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흉악범들, ‘얼굴 공개’ 두려움 낮아진 듯…얼굴 공개 자리가 ‘변명 자리’ 되지 말아야”
최씨와 조씨 등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신상 공개된 흉악범들이 자신의 얼굴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 교수는 “옛날에는 범죄자들이 (얼굴 공개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고 생각해 굉장히 두려워했는데, 이젠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는 걸 별로 겁을 안 내는 것 같다”면서 “(카메라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신상공개가 결정된 김태현(25)도 지난 4월 검찰 송치 전 카메라 앞에 선 자리에서 ‘마스크를 벗어달라’는 요청에 응해 자신의 얼굴을 전부 드러낸 바 있다. 당시 그는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돌연 무릎을 꿇고는 “뻔뻔하게 눈 뜨고 있는 것도 숨을 쉬고 있는 것도 정말 죄책감이 많이 든다”고 했다.

신상공개가 결정된 흉악범들이 언론 카메라 앞에서 발언하는 자리가 이들에게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하게끔 해주는 ‘변명 자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프로파일러는 “자신의 잘못보단 사회의 잘못이라며 책임 전가를 카메라 앞에서 하다 보니 그 사람한테 피해를 본 청소년 등을 거꾸로 모욕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라며 “(범죄자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거나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답을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최씨와 같은 사례가 계속될 경우 타 흉악범들도 유사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부정적 학습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 교수는 “앞으로 저런 사례가 계속되면 (타 범죄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같은 경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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