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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데크 깔고… 별장 둔갑한 농막 [S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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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20 12:00:00 수정 : 2023-12-10 15: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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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안 되는데도 불법 개조
악취·오수로 주민들과 갈등

컨테이너는 옛말… 농지법 비웃듯 한옥형까지
농지 건축물 1가구 2주택 규제 안받아
설치비도 2000만~3000만원이면 충분
캠핑카나 펜션보다 저렴해 ‘확산일로’

불법시설물 설치 마구잡이 농지 훼손
정화조 제대로 안갖춰 여름되면 악취
오폐수가 인근 하천으로 흘러가기도

지번없는 외딴 곳 많아 사고 시 무방비
누전으로 산불 나고 잠자다 숨지기도
지자체선 현장 확인 쉽지 않아 ‘골머리’

“저기 저 집 보이지? 저 집 들어오곤 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니깐. 지날 때마다 악취가 코를 찔러.”

 

지난 15일 경북 안동시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김순자(73)씨는 한 곳을 응시하며 혀를 끌끌 찼다. 김씨가 가리킨 곳에는 컨테이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도 깔려 제법 집 같은 모양새를 갖췄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살림살이도 들어서 있었다. TV에 침대, 옷장, 화장대에 싱크대, 샤워시설까지….

 

언뜻 보면 전원주택처럼 보이지만 농사 창고나 쉼터로 쓰여야 할 농막으로 신고돼 있었다. 이 농막이 들어선 건 지난해 3월쯤이다. 동네 주민에게 ‘주말마다 들어와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한 50대 부부는 처음엔 붙임성이 좋은 듯했다. 마을주민들을 모두 모아 잔치까지 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부부와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졌다. 정화조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악취가 나기 시작하면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농막에서 새나오는 악취는 더 심해졌다고 했다.

 

전국 곳곳이 불법 농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농업용 창고인 농막을 주택으로 활용하는 행위가 성행하면서다.

 

농막은 지자체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전기와 수도를 설치할 수 있다. ‘1가구 2주택’의 꿈에 주말별장처럼 농막을 ‘우후죽순’격으로 설치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난개발은 물론 각종 환경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농민의 편의를 돕기 위해 완화한 농막제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안동시 일직면에 설치된 농막.

◆거주는 불법임에도 “신고만 하면 끝”… 법의 사각지대

 

18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농막은 연면적 20㎡ 이내의 건축물을 뜻한다. 주거 목적이 아니라 농기구, 농자재 등을 보관하는 간이 취사용이다. 만일 대지 위에 주택을 지을 경우 1가구 2주택에 적용이 되지만, 대지가 아닌 농지에 설치할 경우 가설 건축물로 취급돼 1가구 2주택으로 치지 않게 된다. 가설건축물 축조신고서와 가설건축물평면도, 농막배치도, 신분증, 등기부등본만 있으면 누구나 농막을 설치할 수 있다. 여기에 농축산부는 2012년 농막에 전기와 수도, 가스, 화장실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농지법 기준을 완화했다.

 

농막이 난립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건축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여서다. 원칙적으로 농막에서는 거주하거나 장기간 숙박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펜션이나 개인용 별장으로 활용되는 농막이 수두룩하다. 주택법이 규정하는 정식 건축물이 아니다 보니 취득세와 등록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부동산 규제도 피할 수 있다. 초기 농막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짓던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복층을 포함한 2층짜리 형태는 물론 한옥형까지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펜션 이용이나 차박(자동차에서 잠을 자며 머무르는 것), 캠핑 등이 유행하다 보니 발빠르게 농막 단지를 조성해 분양하는 전문업체들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이들 업체는 “일반 주거시설과 별 차이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시설에서 전원생활을 누릴 기회”라고 홍보하고 있다.

 

농막은 설치비는 2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웬만한 중고차 한 대 값에 불과하다. 이보다 훨씬 비싼 고가의 캠핑카나 펜션을 자주 이용하는 도시민들이 눈독을 들이다 보니 “농막은 내놓기 무섭게 팔린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막에 대한 불법신고는 급격히 늘고 있다. 강원 횡성군에 신고된 불법 농막은 2018년 1283건에서 2019년 1313건, 2020년 1482건으로 증가 추세다. 2015년부터 넓히면 최근 5년간 6000여건이 신고됐다. 일대 주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경작하는 외지인만 농막을 설치하게 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충남 공주시가 지난 4월17일부터 5월21일까지 한 달간 농막 실태 전수조사를 한 결과 농지를 전용한 사례는 769건이었다. 이 가운데 91.4%인 703건이 농막이었는데 이들 농막 중 약 30%인 210건은 불법 농막이었다.

 

예천군 호명면에 있는 농막.

◆콘크리트·데크 깔고… 정화조 무설치로 오폐수 무단방류

 

농막 설치 등 마구잡이식 개발에 따른 환경 문제는 심각하다. 농막이 설치된 곳은 대부분 지목이 농지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차량 진·출입이 가능하도록 콘크리트를 부어 도로를 만들고 석축을 쌓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기에 테라스처럼 이용이 가능한 데크를 갖추거나 잔디 식재, 계단 설치 등 불법시설물 설치도 난무하고 있다.

 

특히 농막을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화장실과 같은 오폐수 무단방류 문제가 심각하다. 정화조 설치는 하수도법 제34조에 따른다. 정화조 설치자는 읍·면에서 설치 신고를 받아야 하고 설치 후에는 연 1회 내부청소를 해야 한다. 방류수 수질 기준도 준수해야 한다. 특히 농막의 경우 정화조 설치를 위해 땅에 콘크리트는 타설할 수 없다. 보통은 정화조 시설을 땅에 묻어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절차를 따르지 않고 정화조를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폐수가 그대로 인근 하천으로 배출되는 경우가 많다.

 

농막의 정화조 설치와 관련된 조례는 지자체마다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농막 정화조 설치에 관한 상위법령이 없어서다. 상수원보호구역이나 바다를 낀 지자체의 경우 정화조 설치 규정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인천 옹진군의 경우 농막에 정화조 설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강원 영월군이나 경기 양평군, 경북 성주군의 경우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다. 농막 소유주가 정화조 설치 전 반드시 해당 지자체 환경과에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성주군 관계자는 “설비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정화조를 갖추지 않는 농막 소유주가 적발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농막 설치 신고가 들어오면 정화조 설치를 반드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번 없고 외딴 곳 많아 화재 등 사건·사고 시 ‘무방비’

 

농막이 주거 목적으로 전용되다 보니 전등과 냉난방을 위한 전기에 따른 화재 사고가 우려된다. 주거지가 아닌 인적이 드문 야산 인근 농지 등에 주로 분포하다 보니 위치 파악이나 소방차 등 접근이 쉽지 않다. 지난달 14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한 민가에서는 황토방으로 이용하던 미신고 농막에서 누전으로 불이 나 인근 야산으로 번지기도 했다. 올해 초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한 과수원 농막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잠자던 70대 소유주 등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쓰레기 불법투기와 소각 등의 환경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설치로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적법한 인허가 절차를 거친 전원주택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공통된 매뉴얼이나 지침이 없어 농막 위치를 파악하거나 단속하기도 쉽지 않다. 주거지가 아닌 농지에 분포하고 주택에서 제외돼 별도 지번이나 도로명주소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최근 농막이 대거 늘어나 불법 사항이나 행위에 대한 신고가 증가하자 실태 파악과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단속은 공공 정보시스템이나 위성사진 등에 의존하고 있다. 지번이나 도로명주소가 없고 무신고 건물도 늘어나다 보니 정확한 현장 확인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담당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농막은 가설건축물로 태풍, 화재 등 각종 재해와 안전사고에 매우 취약하므로 반드시 이용 취지에 맞게 이용해야 한다”며 “농지에 농막, 성토 등의 행위 시 반드시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적발돼도 시정명령 그쳐… 난립 막기엔 역부족

 

농막은 숙박이나 거주가 금지돼 있지만 살림은 물론 숙박업을 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대부분 적발돼도 시정명령에 그치는 수준이라 구멍 뚫린 법망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거주용으로 불법 설치된 농막이 늘어나자 저마다 단속을 벌이고 있다. 바닥 콘크리트 타설과 건축면적 초과, 데크 설치, 진·출입로 설치 포장 및 잔디 식재, 조경 설치 등의 위법사항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농막 불법 설치는 건축법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지만 한계가 따른다. 처벌기준이 모호한 데다 농지에 몰래 설치된 농막을 모두 점검하기엔 지자체 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각 지자체는 수시점검 및 공익제보 창구를 열어두고 불법행위를 살피고 있지만 농막 난립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경북 안동시 관계자는 “농막 난립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농지 법규에 관련 기준이 애매하고 지자체마다 단속 기준이 다르다 보니 농막 소유주의 저항도 큰 편”이라고 전했다.

 

지자체는 건축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만 농막 신고 현황을 관리할 뿐 농지 소관 부서에서는 따로 관리대장 등을 만들어 관리하지 않는다. 여기에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상당수 재래적 개념의 농막은 신고·허가 의무도 없다. 불법 농막 정비는커녕 현황, 활용 실태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농막은 점점 더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안으로 농지 이용행위 실태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농작물 경작에 한정됐던 농지 이용행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그 행위가 목적에 맞게 이뤄지는지 등에 대한 실태를 주무 부처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에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막 등 농지 이용 행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에 나설 계획”이라며 “현행 농지법상 허용되는 농지 이용 행위에 대한 제도 개선 여지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농막 난립을 막기 위해선 구체화한 법령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세금 문제 등을 피하고자 도시의 1주택자가 농촌에 또 다른 농막을 지어 별장 형식으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다”면서 “그런 용도로 농막을 사용하면 불법 주택 소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주말농장에 대한 수요도 충족시키고 주변의 농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에서 새로운 형태의 농막 허가 기준을 세워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환경오염은 물론 원주민과 이주 주민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동·전주=배소영·김동욱 기자, 전국종합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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