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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법원장 “강제동원 각하 판결 난센스”

입력 : 2021-06-10 18:59:33 수정 : 2021-06-10 18: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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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하 광주고등법원장 글 올려
“국내법 따라 불법 여부 따져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각하 판결이 나온 지난 7일 원고 측 변호인인 강길 변호사(오른쪽)가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해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현직 고등법원장까지 나서 해당 재판부와 판결 내용을 비판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황병하 광주고등법원장은 최근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일제 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를 각하한 판결과 관련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인지를 따지는 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황 원장은 “국제법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라며 “국제법이 동등한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이기 때문에 국제법 교과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강대국이 약소국을 힘으로 식민지화하는 방법을 다루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힘으로 다른 나라를 합병하는 문제나 독립운동 문제는 약육강식의 ‘사실’ 문제일 뿐 ‘규범’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그러니 그것이 국제법상 불법인지를 따지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 7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배소를 각하하면서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국제법적으로도 인정됐다는 자료가 없다”며 “만약 일본의 병합이 강점에 불과했더라도 식민지배를 금지하는 국제법적 관행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황 원장은 “일제시대 강제노역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는 그 이론적 근거인 불법 행위가 성립하는지를 따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국내법에 따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어떤 사람을 강제로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행위를 하면, 그것이 국내법이건 국제법이건 법질서에 위반된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판결 내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근거한 소신 판결이라는 옹호와 재판부가 외교 영역까지 침범하는 등 판단 근거가 빈약하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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