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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경찰 1명 ‘윗선’ 없이 개인 일탈 결론… ‘꼬리 자르기’ 비판

입력 : 2021-06-09 18:38:26 수정 : 2021-06-09 18: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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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진상조사 의문점은
운전자 폭행 땐 특가법 원칙 깨고
내사 종결 가능한 폭행 혐의 적용
당초 블랙박스 확인도 뒤늦게 시인
‘李 유력인사 인지 몰랐다’ 주장도
진상 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나
警 “李 사건 관련 비위 엄정 조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경찰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사건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약 5개월 만에 마무리 했다. 그러나 관련 의혹들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일 서울경찰청 청문·수사합동진상조사단에 따르면, 5개월여간 이 전 차관과 서초경찰서의 담당수사관 A경사, 형사팀장·과장, 서장 등 91명의 통화내역 8000여건을 분석하고, 휴대전화 12대와 PC 17대 등을 포렌식 했으나 외압·청탁이나 윗선 개입은 확인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이 전 차관의 통화기록이다. 진상조사단은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1월6일부터 사건이 정식 종결된 11월16일까지 이 전 차관의 통화 수·발신 내역 447건과 같은 해 11월17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발신내역 6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이 A경사와 경찰서 출석 관련 통화를 한 것 외에 전·현직 경찰관과 통화한 내역은 없고, 이 전 차관과 통화했던 지인들도 서초서장을 비롯한 서초서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외압이나 청탁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변호사 신분이던 지난해 11월6일 택시 기사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블랙박스 영상의 한 장면. SBS 캡처

그래도 석연치 않은 의혹이 여럿이다. 우선 애초에 서초서 관계자들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이 전 차관의 폭행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는 사실은 지난해 12월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당시 논란의 쟁점은 서초서가 왜 이 전 차관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했냐는 것이었다. 통상 정차 중인 운전자를 폭행할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고,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다. 반면 단순폭행 혐의 적용 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내사 종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경찰이 이 전 차관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하기 위해 일부러 특가법이 아닌 폭행 혐의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당시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담당수사관인 A경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블랙박스에는 이 전 차관이 정차 중 운전석에 앉은 기사에게 욕설하고 멱살을 잡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진상조사단은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A경사의 상급자들도 알고 있었는지 조사한 끝에 A경사의 개인 일탈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진상조사 과정에서 상급자들의 거짓말도 드러났다. 당시 형사팀장과 과장, 서장은 “사건 수사 당시 이 전 차관이 유력인사인지 몰랐기 때문에 봐주기 수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해왔으나, 이 전 차관이 당시 초대 고위공직자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서장 등이 사건 처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수사 과정에 잘못된 것이 없었다면 왜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거짓말을 했는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강일구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폭행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특히 형사과장의 경우 지난해 11월9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란 점을 인지한 뒤 A경사에게 알리고, “(특가법이 맞는지) 판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점 등 석연치 않은 정황이 많다. 진상조사단은 이들이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상 파악 과정에서도 허위 보고한 것에 대해서는 감찰조사를 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이날 이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해 “적절치 못한 사건처리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사전에 제도적으로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비위가 드러난 경찰관뿐 아니라 관리·감독 책임자까지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유나·김승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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