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무심코 누른 동의 버튼… 당신이 어딜 다녔는지 다 안다 [심층기획 - '위치정보 서비스' 사생활 침해 논란]

입력 : 2021-06-08 06:00:00 수정 : 2021-06-08 07:12: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상 파고든 위치정보 기술
대부분 이용자들 별 고민 없이 동의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도 정보 저장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는 전혀 몰라

일부 회사선 ‘강제성 동의’
재택근무 늘면서 근태관리 위해 활용
배달기사들 배달경로 실시간 확인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감시받는 느낌”

활용 범위·절차 논의 필요
랜덤채팅앱 80%가 신고도 않고 사용
고지 안내 제대로 안 해도 제재 힘들어
사용자 검증 가능한 시스템 구축해야
#1. “화장실에 가는 것도 감시받는 느낌이에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기사 백모(41)씨는 얼마 전 칼국수를 배달했다가 손님에게 항의를 받았다. 앱의 실시간 배달 경로 확인 기능을 본 손님이 “왜 다른 곳을 들렀다 왔냐”고 따진 것이다. 손님은 “면이 불어날 수도 있는데 먼저 배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백씨는 “배달 앱에서 배달 순서를 정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했지만, 한편으로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님들에겐 배달이 어디쯤 왔는지 살펴보는 편의 기능이지만 배달기사 입장에서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느낌”이라며 “도중에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토로했다.

#2.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귀갓길 위치정보를 공유해달라”는 애인의 말에 당황했다. 지도 앱의 ‘위치공유’ 기능을 이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상대방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데, 늦은 시간 귀가하는 A씨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A씨는 “위험한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편리한 기능이지만, 누군가 날 지켜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꺼림칙했다”며 “기능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서비스가 늘면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치정보 기능은 수집 전 사전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많은 사람이 ‘무심코’ 동의를 눌러 자신의 위치정보가 어디까지 쓰이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동의에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상 파고드는 위치정보 기술

7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20년 국내 위치정보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위치정보 관련 산업 매출 규모는 2조331억원으로, 전년(1조7884억원)보다 2447억원(13.7%) 늘었다. 올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수요 증가로 23.8% 성장한 2조517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관련 기술은 이미 빠른 속도로 일상을 파고들었다. 위치정보를 활용해 주변 식당을 찾아주는 배달 앱이나 이웃 주민과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당근마켓’ 앱 등은 안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에도 위치정보가 저장된다.

이렇듯 위치정보는 일상적으로 활용되지만, 범죄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는 민감한 정보다.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위치정보를 수집·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용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는 자신의 위치정보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별 고민도 없이 수집에 동의하는 실정이다.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앱 사용이 불가능하게 설정되는 등 사실상 동의를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배달의민족 앱에서 제공하는 배달기사의 실시간 위치 확인 기능. 홈페이지 화면 캡쳐

배달기사들 역시 반강제적으로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하고 있다. 최근 배달 앱은 배달이 시작된 이후 배달기사 위치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앱 측은 배달기사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배달 업무를 하기가 어렵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앱 측은 동의 절차를 거쳤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문제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면서 근태관리를 한다며 직원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이 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때도 사전 동의를 받지만 현실적으로 회사 방침을 따를 수밖에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건 동의가 아니다. 위치정보를 수집하려면 ‘강제성 없는’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며 “노사관계에서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위치정보 활용 범위·절차 논의 필요”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3월 랜덤채팅앱 227개를 점검한 결과 157개 앱이 위치정보를 활용했다. 이 중 80%가 넘는 90개 앱이 위치기반 서비스 사업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에 소홀한 것은 이동통신사도 마찬가지다. 방통위의 이통 3사 위치정보 관리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이통 3사는 가입자에게 위치정보 수집 동의를 받으면서 가입 신청서에 작은 글씨로 고지하는 등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치정보 보유 기간이 지난 뒤에도 제때 파기하지 않은 사례도 적발됐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한 과태료 등 제재 규정이 없어 방통위가 이통사에 개선을 권고하는 수준에서 종결됐다.

염흥열 순천향대 교수(정보보호학)는 “많은 앱이 위치정보를 활용하지만 수집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며 “위치정보가 필수적인 정보인지를 입증 못 하면 개인정보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수집이 불가피한 위치정보라도 가져간 후 어떻게 썼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내 개인정보를 누가 어떻게 썼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런 시스템을 통해 위치정보 수집 남용을 검증하고, 문제가 생긴 집단에서는 개인정보를 함부로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성·이지안 기자 k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