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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때 전사한 삼촌… “오늘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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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7 07:00:00 수정 : 2021-06-07 1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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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진 별
“부인, 당신 아들은 영웅이었습니다”
유해 꼭 찾길… 조카의 ‘마지막 소원’
2018년 8월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미군 관계자들이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6·25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희 삼촌은 6·25전쟁 참전용사입니다. 초신 호수(장진호) 전투에서 돌아가셨죠. 저는 아직도 시신을 발견할 그날만을 기다립니다.”

 

한국의 현충일을 맞아 유엔군사령부가 공개한 한 편의 글, 그리고 거기에 첨부된 70여년 전의 편지 한 통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다. 유엔사는 지난해 6·25전쟁 70주기를 계기로 참전용사 본인 및 가족, 후손, 그리고 지인들을 상대로 6·25전쟁 관련 경험담이나 물건 등을 모으는 ‘당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ShareYourStory)’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진 별

 

6일 유엔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따르면 유엔사가 접수한 가슴아픈 사연 속 전사자는 미국 참전용사 로이 로버트슨, 사연을 보낸 이는 그의 조카다. 로이는 버지니아주(州)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나이가 어려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던 로이는 평소 2차대전 참전용사인 형 클라렌스를 선망했다.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진 뒤 클라렌스는 다시 전쟁터인 한국으로 떠났고 로이도 형을 따라 입대를 결심했다.

 

미국 육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장진호 전투 도중 전사한 로이 로버트슨. 유엔사 SNS 캡처

“클라렌스 삼촌은 동생 로이한테 ‘사나이라면 군대에 가야지’ 하고 독려한 것을 나중에 후회하며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셨죠. 로이 삼촌은 1950년 12월 6일 장진호 전투 도중 하갈우리 부근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유족은 어머니, 그리고 형 클라렌스를 비롯한 4명의 형제자매가 전부였죠. 어머니, 그러니까 제 할머니는 진작 돌아가셨고 제겐 삼촌, 고모인 형제자매 중 생존자는 이제 딱 한 분이세요.”(로이 로버트슨의 조카)

 

그러면서 조카는 로이의 얼굴 사진과 그가 받았던 훈장 사진 등도 첨부했다. 또 로이의 어머니에게 전달됐던 전사자 통보 편지 내용도 소개했다. 포병이었던 로이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해병대 제1사단과 더불어 함경도 쪽으로 북진했던 육군 제7보병사단 57야전포병대대 소속이었다.

 

◆“부인, 당신 아들은 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로이의 상관이던 부사관이 쓴 편지는 “로버트슨 부인께. 저는 부인 아들의 직속상관으로서 로이를 속속들이 잘 알기에 아들의 근황을 묻는 부인의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는 로이를 제 친아들처럼 아꼈습니다. 제 아들도 해군에서 복무하고 있어 저는 부인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압니다. 부인의 아들은 육군 전사였고 부인께선 이 점을 반드시 자랑스럽게 여기셔야 합니다. 한쪽 다리를 크게 다친 상태에서도 로이는 군인으로서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군이 중공군 포위망 안에 갇힌 장진호 전투에서 로이는 (1950년) 11월 29일 다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른 부상병들과 함께 12월 1일 로이는 후송을 위해 트럭에 태워졌고 우리 부대는 중공군 포위망에서 벗어나고자 전력을 다했습니다.”(로이 로버트슨의 상관)

 

하지만 흥남으로의 철수를 위해 계속 퇴각하는 동안에도 미군은 중공군의 공격을 수 차례 받아야 했다. 트럭에 탄 로이는 부상병임에도 추격해오는 중공군을 향해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공군 저격병의 시야에 포착이 됐고 곧 치명적 총상을 입고 말았다.

 

미국 육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로이 로버트슨이 받은 각종 기념물.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8년 우리 국가보훈처가 수여한 ‘평화대사’ 인증서, 6·25전쟁 참전 기장, 6·25전쟁 종군 기장, 유엔군 메달. 유엔사 SNS 캡처

◆유해 꼭 찾길… 조카의 ‘마지막 소원’

 

“부인, 로이는 영웅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숨이 멎는 순간 아무런 고통 없이 떠났습니다. 중공군 포위망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부인의 아들이 전우들을 살리기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부인의 아들이 보여준 용기와 정신은 반드시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겁니다. 부인께 진심을 다해서 가장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로이 로버트슨의 상관)

 

미군은 로이의 유해를 끝내 찾지 못했다. 이 편지는 로이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보관하다가 이후 딸, 그러니까 로이의 누이가 넘겨받았다. 그리고 이제 로이의 조카가 갖고 있다. 조카는 유엔사에 보낸 사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저는 아직도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과 긴밀히 협조하는 중입니다. 로이 삼촌의 시신이 발견될 그날만 기다리면서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 후 북한이 미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골을 상자 55개에 나눠 담아 미국에 보낸 바 있다. 지난달에도 장진호 전투 도중 전사한 미 육군 7사단 소속 엘더트 빅 상병 유해의 신원이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확인되는 등 로이 조카의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김태훈 기자 af103@sef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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