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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한 사회의 성장을 구조적으로 더디게 한다” [책에서 만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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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7 07:30:00 수정 : 2021-06-07 02: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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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인 23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서 영등포소방소 현장대응단 소방관들이 호스로 물을 뿌리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남정탁 기자

“현대 경제학이 밝혀낸 한 가지 사실은 국가의 불평등이 심각할 때 경제성과가 낮다는 것이다.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책은 특히 장기적인 차원에서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2019, People, Power, And Profits.; 박세연 옮김, 2021,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파주: 열린책들, 352쪽.

 

정보 비대칭성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 교수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신간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사회의 성장을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가로막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며 이같이 지적합니다. 즉 불평등이 심해지면 불평등으로 피해를 입는 하위 99%는 말할 것도 없고, 상위 10%조차 사다리에서 밀려날까봐 걱정하는 등 사회의 안정성은 구조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장기적으로 경제성과도 낮아진다는 것이죠. 더구나 비정상적인 지대 수익이 나오면 노동에 대한 의욕이 줄고 자본도 자본시장에서 빠져나와 지대 추구에 나서면서 혁신경제의 동력이 줄어든다고 분석합니다. 이에 따라 불평등의 개선 또는 해소는 단순히 도덕적인 주장이 아닌 실질적인 긴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죠.

 

오바마 역시 대통령 재임 중 더 급박한 과제들 때문에 많은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지만, 한 연설에서 미국 사회의 가장 급박한 당면 과제의 하나로 불평등 문제를 꼬집기도 했지요. 이렇게 말입니다.

 

“불평등의 증가와 사회 이동성의 감소가 하나로 얽혀 아메리칸 드림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그리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단지 도덕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등의 증가와 사회 이동성의 감소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실질적인 결과에 관한 것입니다.”(80쪽)

 

스티글리츠는 책에서 미국식 시장 경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그 해법으로 진보적 자본주의를 설파합니다. 책은 저자의 기존 저서들인 『불평등의 대가』를 비롯해 『세계화와 그 불만』,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거대한 불평등』, 『끝나지 않은 추락』 등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책에 따르면 1989년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에 승리했다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승리를 거뒀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죠.

 

하지만 20년도 채 되지 않은 2008년,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자본주의에 켜진 적신호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번영이란 게 빚더미 위에 지어진 것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났지요. 특히 2016년 증오를 바탕으로 한 트럼프의 집권이나 영국의 브렉시트를 보면서 서구 민주주의 역시 완벽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열광이 사라지자,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과 민족, 성을 기반으로 분열이 광범위하게 노정됐지요.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83%,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의 73%, 히스패닉 남성은 백인 남성의 69% 수준에 불과했다. 건강과 의료도 불평등했고, 기회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근저에는 심화한 부의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스티글리츠의 분석입니다. 미국인의 40%는 아이가 아프거나 자동차가 고장 나 400달러 정도가 들어가는 사소한 일에도 어려움을 겪는 반면 상위 1%는 미국 전체 부의 40% 이상을 차지하지요. 특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아마존의 베조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츠, 버크셔 해서웨이의 버핏 세 사람의 자산을 합치면 미국 하위 절반의 자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에도 유럽과 미국에서 경제가 급성장하고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했지만 그 성과나 열매가 나라와 계층마다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됐습니다. 토마스 홉스는 이를 처연하게 묘사했지요, “인생은 더럽고 잔인하고 짧다”고요. 미국 사회의 불평등은 19세기 말 ‘도금시대’와 1920년대 ‘광란의 20년대’에서 정점을 찍었지요.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며 세계 전체가 흔들렸고, 루스벨트정부는 뉴딜 정책을 수립해 일자리 확대와 경제 재건을 시도하는 한편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내놔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존슨 대통령 역시 노인을 위한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불평등 완화를 위해 노력했지요. 이런 노력이 겹쳐지고 쌓이면서 경제 성장이 이어지고 중산층도 광범위하게 형성됐지요.

 

초국적 헤지펀드가 모여 있는 뉴욕 증권가 빌딩.

하지만 40여 년 전인 1980년 전후를 기점으로 미국 및 서구 자본주의는 다시 악화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이때 미국에선 레이건정부가 들어섰고 영국에선 대처정부가 있었는데, 이들은 케인즈 경제학을 공급중시 경제학으로 대체한 뒤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죠. 즉 빈곤층과 노인,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복지를 대거 축소했고, 사람과 교육, 기술, 의료 등 미래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대기업과 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면 결국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의 소득도 늘어날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대규모 감세를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는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평등 기반을 무너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게 스티글리츠의 분석입니다. 결국 불평등으로 망가진 미국 사회의 진정한 국부 창조를 위해선 법치주의,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적합한 절차 등 민주주의 강화와 함께 정부의 개입과 활동을 통해 역동적인 혁신 경제를 구축하고 번영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만약 스티글리츠의 진단과 분석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 우리는 심각하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이것부터 따져봐야겠지요. 진단이 나온다면 아마 대안도 생각날지 모르겠군요.(2021.6.10)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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