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 등 서방 세계가 잇달아 무시하자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압박 수위를 높이자 중국 역시 러시아와 친밀 관계를 내세우면서 대응에 나섰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당국이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추모집회 불허 방침을 내린 상황에서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과 유럽연합(EU) 사무소 등이 이를 무시하고 각기 촛불을 밝히며 추모집회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
미국 총영사관은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인권 보호를 강조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톈안먼시위 32주년 메시지와 함께 창마다 촛불을 밝힌 영사관 건물 사진을 올렸다. 유럽연합(EU) 사무소도 트위터를 통해 창가에 촛불을 켠 사진을 올리며 “유럽연합은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고, 전 세계에 이를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홍콩에서는 매년 빅토리아 공원에서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려왔지만, 홍콩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집회를 불허했다.
하지만 홍콩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소규모로 모여 촛불이나 휴대전화 손전등 등으로 불을 밝혔다. 이들은 2019년 반 중국 시위의 상징인 검은 옷을 입고 당시 시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미국과 EU 대사관은 이 같은 홍콩인들을 응원하기 위해 대사관이 촛불을 밝힌 것이다.
이에 중국 외교부 홍콩 사무소인 홍콩 특파원공서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졸렬하고 헛된 정치적 쇼’라면서 강하게 비난했다.
특파원공서는 “민주·인권 수호를 명분으로 정치적 의제를 이용해 홍콩 사무와 중국 내정에 간여하려 했다”면서 “외세가 무모하게 당랑거철(사마귀가 무모하게 수레를 막는 것)하려는 계략은 절대 성공할 수 없고, 자신이 지른 불에 타죽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 상원의원들이 6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미국의 백신 지원과 역내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등 밀착 관계를 과시해 중국을 자극했다.
대만을 방문한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 태미 덕워스(민주·일리노이) 의원은 이날 오전 타이베이 쑹산공항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첫 백신지원 집단에 포함되는 것이 미국에 중요했다”며 백신 75만회분을 지원 사실을 밝혔다.
대만은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며 백신접종이 시급한 상황이 됐다. 중국이 백신을 지원받으라고 지속해서 압박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덕워스 의원, 댄 설리번(공화·알래스카) 의원, 크리스토퍼 쿤스(민주·델라웨어) 의원 등 3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공항에서 차이잉원 총리 등 대만 고위인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만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공항을 떠나지 못한 채 미공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를 타고 돌아갔다. 덕워스 의원은 태국 화교 출신이고, 설리번 의원은 1996년 대만해협 위기 당시 현역 장교로 해협 순찰 임무에 참여한 바 있다.
이번 대표단 방문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중국을 자극해 갈등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의 잇단 압박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을 비판하며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과시하고 나섰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민주라는 명목으로 소집단을 만들고 인권을 구실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한다”며 “다자주의의 깃발을 들고 일방주의를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러시아는 책임 있는 대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같은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오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상황을 우려해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정치국원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견제에 나서고 있다. 왕 부장은 중국도 러시아가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가 국제·지역 문제에서 중국과 긴밀한 전략적 협력을 계속하고 상호의 핵심이익 문제에서 서로를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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