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미국 사회 “美軍 내 성차별 개선하라”
최초의 女 육군장관 탄생에 고조되는 기대감

최근 미국에서 창군 이래 첫 여성 육군장관이 탄생해 큰 화제가 됐다. 미군 안팎에선 군대 내 성차별 관행 개선 및 성폭행 범죄 근절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긍정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성 공군 부사관(중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여성 장관이 이끌어갈 미 육군의 변화가 주목된다.
2일 미 언론에 따르면 크리스틴 워머스 육군장관이 상원 인준안 가결로 공식 집무에 들어가면서 새삼 주목을 받는 사건이 있다. 지난해 미국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든 바네사 기옌 일병 피살사건이 그것이다.
기옌은 텍사스주(州)의 육군 기지 포트후드에서 복무하던 중 지난해 4월 22일 갑자기 실종됐다. 조사 과정에서 그가 “최근 상사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며 주변에 도움을 호소한 정황이 포착됐다. 신고를 권유하는 지인에게 기옌은 “성폭력을 당한 다른 여군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피해를 알려도 부대에서 무시됐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4월 30일 기옌은 부대 밖에서 심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헌병은 같은 부대 상급자 에런 로빈슨 상병을 성폭행 및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에 나섰다. 경찰에 쫓기던 로빈슨은 결국 소지하고 있던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미국 사회는 분노로 들끓었고 육군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육군 내부에 성차별과 성폭행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관련 의혹을 조사할 독립적 위원회까지 꾸려졌다. 육군은 자체 감사를 거쳐 기옌이 속했던 부대 지휘관 등 14명을 중징계했다. 세상을 떠난 기옌은 일병에서 상병으로 1계급 진급이 추서됐다. 이후 그는 미군 내 성차별 및 성폭행 문제 해결 필요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새롭게 육군을 이끄는 워머스 장관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육군장관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2016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을 지냈고 최근까지 민간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국제 안보·국방정책 센터장을 역임한 ‘정책통’이다. 본인이 군복무를 하진 않아 야전 경험은 없지만, 퇴역 해군 장교를 남편으로 둬 사실상 군인 가족에 해당한다.
마침 워머스 장관 후보자 지명을 전후해 기옌 피살 1주기를 맞은 미국 사회는 최초의 여성 육군장관 발탁이 군내 성차별 및 성폭행 근절, 그리고 양성평등 문화 정착에 기여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크다. 기옌 유족을 대리하는 나탈리 코밤 변호사는 “일각에선 워머스 장관에게 군복무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약점으로 거론하는데 오히려 외부에 있던 사람이 문제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도 있다”며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과거 워머스 장관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단지 여성이 처음 육군장관이 됐다는 점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워머스의 육군장관 취임을 계기로 육군 문화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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