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밝은 이에게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가장 빛난 스타는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 이봉련이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 ‘햄릿’ 주연으로 큰 상을 탔다. 2006년 뮤지컬 단역으로 무대에 데뷔한 후 숱한 작품에서 배역 경중을 따지지 않고 좋은 연기를 선보인 결과다. ‘배우 이봉련’에 대해 봉준호 영화 감독은 ‘가장 주목하는 연극배우’로 지목했고, 이정은 배우는 “잠깐 등장해도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지난 1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봉련은 “시상식에 후보자로서 앉아는 있었지만 정말 상까지 탈 줄 꿈에도 몰랐다”며 “태어나서 상을 처음으로 받은 듯하다. 어릴 때는 성실하지 못해 개근상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유일하게 성실하게 일해서 받게 된 개근상처럼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했다.
-무수히 많은 단역으로 경력을 쌓았다. ‘배역 경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 내는 성격파·개성파 배우’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저라는 배우가 걸어온 길을 가장 잘 표현해준 고마운 평인 듯하다. 경중을 따지지 않고 했는데 너무 ‘잠깐 출연’이 반복돼 힘든 시기도 있었다. 잠깐(출연)일 때가 더 어렵다. (화면에) 계속 나오면 서사를 갖고 연기를 풀어갈 시간이 주어지는데 잠깐이면 촬영 현장의 낯섦까지 감내하면서 ‘치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그 역할, 캐스팅 목표에 딱 부합하는 연기를 잘해줘야 하니 부담감이 커진다. 그런 힘들었던 시기를 누군가는 기억해준 평가라서 위안을 받는다. 지금은 많은 분이 기억해줘서 고마운데 그런 (무명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나한테는 당연히 걸어왔어야 할 길이고 시간이었다 싶다. 저한테는 모든 게 의미가 있다.”
-“죽 출연하는 인물보다 단타로 치고 빠지는 인물이 더 어렵다”고 말했는데 좀 더 설명해달라. “배역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배역을 맡아)‘어떻게 해야지’하는 생각을 자꾸 하면 어려워진다. 그냥 그런 사람으로 있으면 되는데 이왕 (촬영장에) 갔으니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어린 시절엔 큰 부담이 됐다. 배역 무게가 가볍고 잠깐인데도. 대사가 한두 마디밖에 없는데 ‘(배역을)살려주세요. 재미나게 해주세요’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도 연기를 즐겁게 하려고 생각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하는 순간 망한다.”


-대학원까지 마친 사진 공부가 무대에 설 때 도움되는 면이 되는가.
“연기나 사진이나 같은 일의 연장선이다. 도구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에서도 제가 관심 둔 건 다큐멘터리 사진이었다. 도구만 바뀌어 카메라가 없을 뿐이지 삶을 기록하는 건 연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나에게 사진을 가르친 선생님이 종목을 바꿨다고 실망하실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사진 관둔 거 미안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네 에너지가 확장될 매체를 선택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때 저도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보다 연기가 내 에너지를 더 커지게 하고 더 유연하게 쓸 수 있도록 확장해주는 것 같다. 사진이나 연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여러 배우가 거쳐 간 착한 뮤지컬 ‘빨래’에도 주인할멈 역으로 4년(2008∼2012)이나 출연했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 작품인가.
“같이 한 멤버가 너무 유명한 배우들이 많다. 이정은·정문성·이규형 등. 노역(老役)을 그때 처음 했다. 28세에 노역을 처음 하는데 정말 힘들었다. 관객이 많이 사랑해줬는데 그 이유는 이야기가 지닌 힘 때문에 정말 그 배역을 사랑해줬다. 제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가 안 돼서 몸을 쓰고, 목소리도 바꾸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전부 동원했다. 그러니 목도 쉬고 허리도 아프고, 항상 어디가 뻐근하고 그랬다. (노역 연기에 필요한 걸)찾아야할게 무언지 몰라서 겉모습만 바꿔서 하는 정도밖에 안 됐는데 관객이 너무 배역을 사랑해줬고 덩달아 배우도 사랑을 받았다.”


-‘빨래’ 출연 후 박근형 연출의 극단 골목길 단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어떤 인연으로 시작됐나.
“2012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박 선생님이 공연하신다고 해서 ‘전명출 평전’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그게 연이 돼서 선생님과 같이 작업하게 됐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모이면 ‘우리는 골목길이야’하고 활동한 건데 이어서 골목길 10주년 공연으로 ‘청춘예찬’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도 참여하면서 연을 이어가게 됐다.”
-박근형 연출과 작업은 어떠한가.
“저한테 선생님은 항상 가슴이 뜨겁길 바란다. 또 배우는 그런 존재라고 믿고 계신다. 배우 가슴에 뜨거운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해주는 분이다. 어떤 난관에 부닥쳤을 때 ‘이럴 때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까’ 떠올려 보기도 한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분이시다. 박 선생님 공연에 참여 안 해도 보러 가는데 항상 새로움에 뒤통수를 맞곤 한다. 대본이 늦게 나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한데 생각해보면 다른 작업에서도 대본 수정은 끊임없이 벌어지곤 한다. 오래 같이해서 그런지 그런 불편함보다는 무대 서기 직전 느끼는 불안함이 제일 크다. 그런데 시상식은 처음이었는데 무대 설 때보다 더 떨리더라. 다리도 후들후들하고. 다른데 집중하려고 손톱으로 계속 몸을 찔렀다. 하하하.”

-영화 ‘택시운전사’의 임산부, ‘옥자’의 안내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총무부 미스킴, ‘82년생 김지영’의 혜수,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고필숙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맹활약했는데 주인공 여수친구로 나온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작 아닌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속으로 ‘저 배우 이름은 알지 못하겠는데’라면서도 항상 ‘안녕하세요.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아직 ‘어디 나온 누구’로 꼽지는 못한다. ‘응사’를 많이 기억해주시긴 하나 지난해 드라마 ‘스위트홈’의 유모차 엄마, 그리고 같은 시기 방송된 ‘런온’ 출연 이후 많이 알아봐 주신다. 마스크 쓰고 다니니 길에선 몰라봐도 식당 가면 마스크를 내리니깐 자꾸 쳐다보곤 알아보고 서비스도 주시고 그런다. ‘응사’ 때는 아무도 못 알아봤다.”
-연기에 그토록 성실하게 매진한 무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가 준비를 한 이야기를, 그게 뭐라고 관객이 극장까지 찾아와서 불 꺼진 객석에서 봐주신다. 두어 시간 동안 그 이야기 빠져드는 순간, 무대에서 배우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작지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의 변화 등이 작지만 생긴다는 게 연기의 제일 큰 매력이다. 대단한 걸 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잠시나마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커튼콜 때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 앞에 서면 무슨 생각이 드나.
“공연을 만족감으로 끝내는 경우는 적다.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오늘 이렇게밖에 못했는데도 박수를 보내주시는구나’하는 날이 더 많다. 부족함과 결함을 느끼면서 하기에 그렇다. 티가 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사소한 실수가 있었던 경우도 많고 만족감으로 커튼콜을 받는 날은 거의 없다. 다만 동료 배우들과 무사히 공연 끝냈다는 기분이 크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무대 위에서 수많은 약속이 다 지켜져야 가능한 일인데 하루하루 어려운 일이다. (박수를 받는 마음은) ‘오늘도 무사히’도 있고. ‘찾아줘서 감사합니다’도 있고 ‘부족합니다’도 있다.
-데뷔 20년을 바라보는데 연기가 쉬워지나. 어려워지는가.
“하면 할수록 어렵고 무섭고 두렵다. 더 예민해진다. 그냥 ‘너무 즐겁다. 연기 하기를 잘했어’하는 시간은 넘어갔다. 지금은 책임감도 크고 내 한마디, 내 연기에 영향이 생기는 게 두려워서 마음이 예민해지고, 작업할 때 생각 안 해봤던 지점도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욕심이 좀 더 나이가 들면 내려놓아 질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지금은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생기는 시기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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