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국내를 대표하는 화장품·뷰티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 이니스프리에서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이 갑자기 주목받으며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제품 기능 등으로 주목받은 것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린 워싱(green washing) 논란이다.
그린 워싱은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위장하여 홍보하는 활동을 뜻한다. 보통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오염문제는 최대한 감추고, 재활용 등 일부 활동을 크게 부각시켜 기업 전체가 친환경에 매진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제품은 지난해 6월부터 판매된 화장품으로, 용기 외관에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용기야)라고 크게 표기돼 출시했다. 덕분에 친환경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확산해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출시 당시 기존 제품과 비교해 ‘용기의 플라스틱 함량을 약 52% 감량했고, 캡과 숄더에는 재생 플라스틱을 10% 사용해 새로운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 감축에 동참했다’는 문구를 함께 홍보하기도 했다. 이를 받아든 소비자는 이 용기가 당연히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을 대부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한 소비자가 이 종이 용기를 분리해본 결과 안에 별도의 플라스틱 용기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에 수많은 소비자가 배신감과 허탈감을 표출했다. 오히려 이 제품은 종이와 플라스틱을 따로따로 배출해야 하는 만큼 친환경과는 더욱 거리가 먼 포장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린 워싱을 둘러싸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큰 자금이 움직이는 ESG(Environment 환경·Social 사회·Governance 지배구조) 금융에서 빚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ESG 금융(채권, 대출, 펀드)은 보통 규모 자체가 제품 생산보다 훨씬 큰 탓에 보다 심각한 사회적 파급과 문제를 일으킨다. 대표적 예로 기업이 사회적책임투자(SRI)나 미래, 친환경 사업 등을 위해 자금 조달을 할 때 많이 활용되는 ESG 채권 중 녹색 채권(Green Bond)에서 그린워싱이 발생할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
ESG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기업 신용도 조사 ▲조달 자금의 사용 목적 ▲프로젝트 평가와 선정 과정 ▲자금 관리 ▲사후 보고 등의 핵심 요소와 의무사항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채권 발행원칙은 반드시 ICMA(국제자본시장협회)의 SBP·GBP(사회적·녹색채권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올해 발표된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을 비롯한 유럽연합(EU)과 전 세계 투자·금융시장의 기후 재정, 친환경 사업, 신재생 에너지 관련 분야로의 쏠림현상 등으로 현재 ESG 채권 발행과 ESG 펀드 시장의 규모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일 기준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ESG 채권은 모두 621개 종목으로, 상장 잔액은 92조473억원이며, 이 중 사회적 채권이 78조5893억원(85.38%)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이 사회적 채권으로 분류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성장세가 가파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ESG 채권의 핵심은 녹색 채권과 지속가능 채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녹색 채권의 발행 비중이 압도적이다. 미국 경제 전문 통신 블룸버그와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된 녹색 채권의 규모는 1752억달러(약 196조3992억원)로 전체 ESG 채권 시장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1527억달러에서 225억달러 증가한 수치다.
기업이 녹색 채권을 발행한 뒤 그린 워싱을 한다면 문제의 기업뿐 아니라 채권이 발행된 국가,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현재 녹색 채권 등 ESG 채권은 국내 3대 신용평가사와 4대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인증 및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각 사의 기준도 다르고, 글로벌 기준으로 발행되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편이다. 이들 신평사는 ICMA 및 CBI(국제기후채권이니셔티브)의 채권 발행원칙을 맞추고 있다고 입을 모으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의 기준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한 고위 임원은 “미흡한 기준으로 발행 후 그린 워싱이 생긴다면 해외에서 국내 시장을 신뢰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며 “국내 시장의 기준과 원칙도 글로벌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ESG 금융’을 명분으로 한 채권 발행과 검증 등에 대해 정부 차원의 높은 관심을 드러내기 했다.
ESG는 이제 국내 기업의 가장 우선적인 정책목표가 되었다. 상품 제작과 ESG 금융의 활성화 및 그 속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경영활동이 정말 지구를 위한 것인지, 또 소비자의 환경 인식과 사회적 인식을 크게 확장시키는 일인지 다시 한번 점검이 필요하다.
국내 유일의 ICMA ESG 채권원칙 옵서버 기구로 지정된 UN SDGs 협회는 오는 6월 ESG 채권에 대한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연계성과 목적에 맞는 적합성을 구분하는 검증 프로그램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의 그린 워싱 방지와 검증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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