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트렸다든가, 백신에는 특정 단체가 우리를 통제하는 전자칩이 들어 있다는 식의 말이 들린다. 이런 식으로 특정 사건은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리에 수행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을 음모론이라고 한다. 아폴로 9호의 달 착륙은 미국 항공우주국의 조작이라거나,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저질렀다는 주장도 자주 나오는 음모론이다. 인식론은 지식의 근원이나 한계 그리고 정당화를 다루는 철학의 분과이다.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증거가 있는데도 숨겨진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인식론의 관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장을 의심하는 것이 꼭 잘못은 아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대체되는 과정을 보더라도 상식을 의심하는 것이 곧 인류의 발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의심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음모론자에게 그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꼭꼭 숨겨 놓고 있기에 제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음모론은 음모라고 하는 순간 그 주장을 검증할 수 없으니 애초부터 합리적인 주장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복잡한 기획을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모론자는 이것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물론 음모론자들도 근거를 제시하기는 하며, 상당히 많은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거라는 것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고른 것이고, 이미 정설인 이론의 결정적인 근거를 막상 반박하지는 못한다. 예컨대 9·11 테러 음모설을 주장하는 쪽은 오사마 빈 라덴이 자신이 저질렀다고 비디오로 말했음을 반박하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오사마 빈 라덴도 미국 정부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할 것인가. 음모론자는 어떤 합리적인 증거나 전문가의 견해를 제시해도 그것도 음모로 해석한다. 참 쉬운 방법이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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