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설명 없이 “통상 있는 일” 뭉개
무인기 침범, 北 비위 맞추기 급급
軍, 상처받고 무시당하는 일 없어야
며칠 전 한 저녁 모임에서다. 참석자들은 50~60대로 꽤 막역한 사이였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돈 뒤 세상 흉허물이 들춰졌다. 누군가 윤석열정부는 “더는 기억하기 싫다. 지우고 싶다”며 입을 뗐다. 그러자 현 정부를 향한 볼멘소리도 튀어나왔다. 새해 덕담은커녕, 요즘 핫한 주식 얘기조차 뒷전이다.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아슬아슬하게 전개되던 상황은 국방비 미지급 사태를 두고 이구동성 비난을 쏟아내며 반전됐다. 군대 얘기는 여전히 무한 공감이다. 뜻밖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2025년도 예산안 가운데 일부 전력운영비(5002억원)와 방위력개선비(8036억)를 제때 받지 못했다. 총 1조3038억원의 ‘국방비 펑크’가 발생한 것이다. 전력운영비는 군의 일상적 운영에 쓰이는 돈이다. 방위력개선비는 무기 체계 관련 비용이다. 국고가 바닥나 안보 태세와 직결된 국방비를 지급하지 못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심지어 말단 병사들 적금 납입도 일주일 늦게 정산됐다고 한다. 재정 운용의 민낯이 고스란히 까발려진 상황에서도 정부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통상 있는 일”이라며 뭉갰다. 군심이 어땠을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한 참석자가 “지난해 국민 모두에게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했던 정부 아닌가. 나라 살림 우선순위와 재정 운용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한쪽에선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군 홀대 내지는 박해일 수도 있다”며 음모론을 편다. 침묵을 지키던 이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개인에게 다시 돈을 푼다는 얘기가 유튜브에서 돌아다닌다”고 거들었다. 그것도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하며. 정적과 함께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설마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현실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무인기 얘기로 이어졌다. 지난 10일 북한이 작년 9월과 지난 4일 한국이 침투시킨 무인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자, 우리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 우리 군이 보유한 기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민간 무인기가)사실이라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라며 군경 합동수사를 지시했다. 돌아온 건 막말과 위협이다. 다음 날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본질은 행위자가 군부냐 민간이냐에 있지 않다”며 “윤가든, 이가든 우리에겐 똑같은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13일엔 우리의 남북관계 개선 희망을 ‘개꿈’과 ‘망상’에 불과하다며,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가 없다면 비례 대응이나 입장 발표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남북대화를 위해 가급적 북한을 달래려는 정부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구체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성급하게 북한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정작 이번 북한발 무인기 사태의 실체와 책임 소재는 안갯속이다. 조잡하다지만 무인기 이동 경로 등에 비춰볼 때 분명 의도를 가진 행동이다. 대북 정보수집은 정권과 별개로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만약 군이 민간을 사주해 이뤄진 침투라면 어떻게 할 건가. 전후 사정 얘기를 다 털어놓기는 힘들 것이다. 북한은 2014년 이후 확인된 것만 최소 10여 차례 무인기 도발을 했다. 특검 공소장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안보 위기 상황을 연출해 계엄 선포 요건을 충족하려는 목적으로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렇다고 북한의 과거 도발 행적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북한은 자신들의 무인기 도발과 관련해선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오히려 “남측이 날조한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혼란의 연속이다. 중·일 갈등으로 한반도 주변 긴장과 압박도 쉽사리 걷히지 않는다. 북한의 군비 확장은 더욱 노골화한다. 우린 어떤가. 곳곳에서 자중지란이 넘쳐난다. 국방비 펑크와 무인기 사태를 보면 안보와 국방으로도 화가 번질 기세다. 국가를 지키는 마지막 보류인 군이 더는 상처받고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잣거리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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