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
무너지고, 화려한 외관 사라졌지만
고대 그리스 건축의 압축미 보여줘
로마때 세워진 고대 극장 잘 보존
지금도 오페라 등 야외 공연 열려

오랫동안 그리스에서 중심 도시 역할을 했던 아테네가 공식적으로 수도가 된 것은 1834년부터이다. 도시국가로서 이 땅에 아테네가 나타난 것이 기원전 8세기쯤이고 로마가 그리스를 점령한 것이 기원전 2세기쯤이니, 얼마나 긴 시간 외부의 지배를 받아왔던 것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고대 그리스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놀랍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에는 멈춰버린 시간을 간직한 고대 흔적들이 세월을 무색하게 한다. 그리스에 오면 누구나 방문하는 이곳!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번 여정을 시작한다.
지난밤 자정 넘어 도착하여 늦은 아침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6시간 시차가 늦잠을 방해했다. 잠은 설쳤지만 늦은 밤에 슬쩍 본 파르테논신전이 궁금하여 설렘을 갖고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묘한 끌림이다. 파르테논신전 외에도 다른 신전과 부속 건물들이 있는 언덕이 아크로폴리스이다. 언덕이라는 아크로(Acro), 도시라는 폴리스(Polis) 의미처럼 높은 언덕에 도시가 형성되어 서쪽 출입 구역을 제외하면 다른 삼면은 절벽이다. 과거에는 방어용으로 적합했지만, 오늘날에는 출구와 입구가 같아 동선이 겹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프로필라이아라는 거대한 관문에서 오고 나가는 엄청난 인파와 함께 일정을 시작한다. 관문을 지나자 큰 숨을 내쉰다. 시야가 확 트이는 넓은 지대이다. 생각보다 넓은 면적에 큰 파르테논신전과 왼쪽 편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에렉테이온신전, 단 두 개만 형체가 보인다. 나머지는 땅에 흩어져 누워 있다. 결국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신전만을 기억에 담아둔다. 밀려든 인파에 놓친 니케의 신전을 확인하고 입구였던 출구를 통해 돌아선다.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 수호신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이다. 아테나는 지혜의 신, 공예의 신 등 다른 역할도 있고 로마신화에서는 미네르바로 불리었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인데, 파르테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원래 신전 내부에 아테나 파르테노스 (Athena Parthenos)라는 12m 처녀 신 아테나 조각상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거대한 조각상을 찾아볼 수 없다. 조각상뿐 아니라 파괴된 많은 기둥들과 채색이 화려했다던 외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르테논신전은 장엄하다. 그 앞에 서서 마주하면 자연스레 압도감에 놀라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로 파르테논신전이 선정된 듯하다. 조각상도 없고 기둥도 무너지고 화려한 외관도 사라졌지만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현대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다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응축해서 보여준다는 조형미를 즐기며 파르테논신전 주변을 여유롭게 거닐고 언덕 끝자락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가까운 곳에 포도주의 신이자 농업의 신으로 잘 알려진 디오니소스 이름을 한 고대 극장과, 의학의 신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건물, 그리고 민주주의가 태동한 아고라 광장 등이 있다. 과거 아고라 광장은 많은 건물들이 있었지만 아폴론신전이나 아레스신전 등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헤파이스토스신전만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좀 더 멀리 보면 파르테논신전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기둥 104개 중 15개만 남아 있는 제우스신전, 그 옆으로 현대 그리스의 중심가 산티그마 광장,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근대 올림픽 경기장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언덕을 내려가 오늘날의 아테네로 향한다. 아테네 어디서나 보이는 신전의 보호아래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의 아테네를 찾아간다.

아크로폴리스를 떠나기 전, 로마 시대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을 지난다. 이곳은 지금도 야외 공연이 열릴 정도로 보존, 복원이 잘 된 곳이라 한다. 공연을 안내하는 플래카드와 홍보물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혹시 이번 여행기간 중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갖고 살펴본다. 아테네로 돌아오는 여행 마지막 시점에 열리는 오페라 공연이 눈에 띈다. 고대 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볼 기회일 수 있어 예약을 하기로 했다. 여행 일정을 맞추지 않으면 이렇게 공연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기에 좌석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부디 착한 신들이 이번 여행길에 함께 하길 바랐는데 정말 그러할지. 강렬한 지중해 햇살이 기분 좋은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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