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라는 게 사적인 복수를 막고 제재하기 위해 세운 측면도 있는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법이라는 테두리 때문에 사적 복수가 금지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악마의 본능이랄까, 복수의 충동이 다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찰과 검사, 정치인, 기업인 등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 ‘집행관’들의 분투와 몰락을 그린 사회 미스터리 소설 『집행관들』(다산책방)을 펴낸 조완선 작가에게 ‘어느 사회나 척결되지 않는 부패나 적폐가 있기 마련인데, 왜 극단적인 사적 제재를 생각하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인간의 본능을 거론했다.
“작품을 쓰기 전 몇몇 사람들을 모니터링 해봤는데, 열이면 열 다 그런 마음이 있더군요. 더 놀랐던 건 착하고 내성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 오히려 더 강했어요.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복수나 제재의 마음이) 더 강했죠.”
소설은 호화로운 말년을 보내던 일제 고등계 경찰 출신 고문 경찰이 수십 년 전 그가 사용하던 고문 방법으로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검경은 수사대를 꾸려 본격 추적에 나서지만 적폐 세력 척결을 환호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의도치 않게 역사학자 최주호가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 사이 또 다른 살인이 잇따라 발생한다. 집행관들은 “사회의 기생충들, 변절을 밥 먹듯이 하고, 치부를 정당화시키는 종자들”을 보내야 한다고 선전포고까지 한다.
“‘이해가 안 가는군...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난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야. 불타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지. 그런 건 나와는 맞지 않아.’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굳이 말하자면...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분노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하지만 방법이 틀렸어. 다른 방법도 많잖아.’ ‘이게 가장 확실해!’”(161쪽)
등단 이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을 비롯해 역사성과 사회성이 짙은 미스터리 작품을 써온 조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한국의 부조리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녹여냈다. 스스로 ‘생계형 작가’임을 강조한 그를 지난 8일 서울 합정역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문 경찰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살해되는데, 꼭 죽여야 했느냐.
“합법적인 단죄가 안되니까. 모두 거물급 변호사 등을 사서 면죄부를 받는 것을 목도한 사람들이다. 인간쓰레기라서 죽이는 게 아니라, 범죄자여서 철저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 목록과 법률 조항까지 디테일하게 조사해서 단죄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내는 게 무난하다. 책에서도 최주호 교수가 ‘꼭 죽일 필요가 있느냐’고 묻지만, ‘보낼 놈은 보내야지 망설일 게 뭐가 있느냐’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가 1996년 버스기사 박기서씨에게 ‘정의봉’이라고 적힌 방망이에 맞아 피살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한 번은 (경기도) 이천에서 큰 형과 술 마시러 갔는데, 형이 ‘여기 안두희가 산다’며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앞을 가르켰어요. 그 얘기를 듣고 소름이 쫙 돋더군요. 얼마 후, 안두희가 박기서씨의 ‘정의봉’이라고 쓰인 육모 방망이에 맞아 죽었지요.”
―희생된 노창룡 등은 기시감 있는 인물 같은데.
“작품 속 노창룡은 일제 경찰 출신인 노덕술과 김창룡을 합친 인물이다. (소설 속에선 노창룡이 말년에 일본에서 사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가 아니라 다른 친일파가 건너갔고, 광복회 회원들이 그를 잡으러 일본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

―안희천, 배동휘, 정윤주 등 집행관들 면면도 재밌다.
“나름 모델이 있다. 나의 경우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료를 버무려서 비빔밤을 만든다. 제 소설이 다 그렇다. 애정이 가는 집행관은 허동식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용산 참사를 보면서 마음이 바뀐다. ‘내가 여기에서 이런 거나 찍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음을 많이 드러내지는 못했는데,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하고 정의감 불타는 것도 아니면서 휴머니스트이다.”
―역사학자 최주호나 문기욱 지검장도 돋보이는데.
“최주호는 증언자의 역할이다. 문기욱은 진짜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인데, 검사라고 해도 못하는 게 많았을 것이다. 흔히 회자되는 ‘윗선’ 때문에 수사에 배제되는 것도 느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감추고 있지만 나중에 속이 터지는 것이다. 배후이면서 큰 판을 짜고 모든 것을 종합한, 어쩌면 이용해 먹은 사람일 수 있다.”
―고문 등 사건이나 인물 등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저는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자료 수집에는 능하다. 처음에는 국회 도서관에서 일제 고문 자료를 많이 찾았다. 책도 없고 자료도 없더라. 『신동아』 등에서 일제 친일파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죽검 봉검 등의 내용을 차용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공감대가 있는 것이 놀랍다.”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난 조 작가는 82학번으로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반달곰은 없다」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현재 서울 목동에서 작업하고 있다.

―어떻게 문학의 길에 들어선 것인가.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문청(문학청년)’이었다. 작은 형의 영향을 받아 꿈을 키웠다. 학생 잡지 등에 시 같은 것을 내는 등 일찍 방향을 정하고 딴 곳으로 두리번거린 적이 없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건국대, 단국대, 영남대 등의 여러 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도 힘들게 했다. 언론사 신춘문예 등에 계속 떨어졌는데, 문학지로는 『작가세계』와 『문학사상』 밖에 신인상밖에 없었을 때였다. 등단작 「반달곰은 없다」는 고문 경찰 이근안을 잡기 전 이근안의 후배가 화자로 돼 쓴 중편 소설이었다.”
―역사 추리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어떻게 미스터리 쪽으로 간건가.
“처음 저의 작품 성향은 우리 사회의 리얼리티를 많이 담자는 쪽이었다. 등단하니까 문단쪽 주류 인사들과 술도 마시고 했는데, 나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혼자 하이에나처럼 하려고 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역사나 추리 등을 해볼까 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을 쓰게 된 거다. 한 선배 작가와 술을 먹는데, 그가 문뜩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즉 일본의 장르소설이 왜 많이 팔리느냐 하면 문단이 정식으로 등단하고 문장 수업을 한 사람들이 추리 장르를 쓰기 때문에 배경이나 플롯이 강하고 독자들에게 먹힌다, 반면 우리나라 대중 문학은 우연이 너무 많다, 상상력은 풍부한데 글이 받쳐주지 안는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 그때 팍 꽂히더라. 당시 정조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외규장각으로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는 이후 일본 안국사 초조대장경 도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천년을 훔치다』, 조선시대 예언서를 다룬 『비취록』, 허균과 홍길동의 만남을 상상한 『걸작의 탄생』, 1980년 시대를 담은 미스터리 『코뿔소를 보여주마』 등을 차례로 펴냈다. 김만중문학상, 롯데시나리오공모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내 장르 소설도 수준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나.
“문체가 어색한 문장은 고치면 좋아지는데, 우리나라 장르 작품들은 이게 좀 약한 것 같다. 순문학은 문장력이 있고 탄탄한 구성력이 있어 어색하지 않다. 내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슷한 문장이 거의 없다. (철저한 자료) 조사까지 하고 (글을) 꼼꼼히 봤다. 뼈를 깎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언어에 대한 미적 감각이 미학과 수준은 돼야 한다. 나의 경우 사전에서 잠든 단어를 끄집어내 사용하곤 한다.”
―‘조완선표 미스터리 소설’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추리소설이 전혀 아니다. 다만 사회적인 내용을 가미하고,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역사적인 내용을 가미했다. 추리소설은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읽어본 게 『용의자 엑스의 헌신』 정도이다. 처음부터 이쪽을 시작하지 않아 몸에 잘 붙지 않더라. 추리라기보다는 사회성을 많이 넣고 싶었다. 유토피아적인 새로운 세상, 이런 것도 넣고 싶었다.”

―미스터리 소설은 캐릭터와 함께 플롯이나 구성, 사건이 매우 중요한데.
“최인호 선생은 다작을 했지만, 글들이 모두 유연하다. 최 선생은 작품 한 편을 쓸 때 먼저 큰 그림을 그려서 구성이 어색하지 않게 한다고 하더라. 저도 처음 쓸 때 밸런스가 맞지 않았고 고치는 게 아니라 심지어 들어내는 등 작품이 산으로 가기도 했다. 지금은 처음부터 캐릭터나 사건을 미리 준비하고 자료도 미리 찾아놓고 쓰는데, 그렇게 하면 빨리 쓰게 된다. 영화 감독 류승완은 언젠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을 써먹으려고 20년간 준비해 왔다고 하더라. 결국 영화 「베테랑」의 초고 시나리오엔 없었는데, 그때 이 대사를 써먹었다. 나이 경우 줄거리와 플롯을 미리 구상하고 자료를 찾는 게 70~80% 걸리는 것 같다.(플롯 구상이 먼저인가, 자료취재가 먼저인가) 나는 동시에 한다. 이런 것을 쓰겠다고 큰 그림을 그리면 필요할 것 같은 자료를 막연하게 찾는다. 그런데 자료를 찾으면 또다른 자료를 찾게 된다. 「반달곰은 없다」를 쓸 때 고문 방식을 들여다봤는데, 고문 방식이 일제식이더라. 일제 고문 방식을 찾아보다가 조선은 어떨까, 해서 다시 찾아보게 됐다. 자료가 자료의 새끼를 치더라. 지금은 많이 버렸지만, 옛날 자료 용지가 굉장히 많았다. 양념으로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고 독자들에게도 좋을 것 같으면 작품 내 크기도 달라질 수도 있다.”

―글쓰는 습관이나 징크스 같은 게 있는지.
“주로 밤에 쓰고, 술을 좀 많이 마신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서 내 소설 얘기를 하지 않은 척하면서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어 아이디어도 얹고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실제 작품 내용이 바뀔 때도 있다. 작가들 대부분이 그럴 텐데, 메모를 하지 않아도 뇌 어딘가에 저장이 되더라. 글을 쓸 때 열려서 그 내용이 나온다.”
“마지막 문학 모티브 가운데 하나는 새 세상, 과격하게 말하면 혁명인데, 혁명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그는 현대사를 담은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1980년 5월부터 1987년 6월까지 1980년대 시대상을 담은 대하소설(가칭 『항쟁』)을 쓰고 싶어요. 구상은 이미 해놨고요.” 이야기는 홍경래로 갔다가 영화 시나리오로 오는 등 종횡무진 거침없이 내달렸다. 평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그는 “오늘 말이 잘 나오네”라며 웃었다. 그건, 아마 육박한 봄기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2021.3.24)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제현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