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탄생 소련 새 수도로
냉전 시대 공산 진영의
대표 도시
모스크바 재건 계획으로
1930년대부터 50여년간
수많은 건물들 철거·이동
크렘린 궁전과
성당·미술관부터
현대적인 고층 건물까지
웅장한 매력
지금도 국제적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변신중

아침 산책을 가볍게 마치고 짐을 정리한다. 짧고 아쉬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이동할 예정이다. 러시아에 오는 수많은 관광객들 중 반은 광활한 러시아의 자연 매력에 빠져 산, 강, 호수를 찾고 반은 대표적인 도시 모스크바 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는다고 한다.
조금은 바쁜 일정일 수도 있지만 한 도시에만 머무르기가 아쉬워 상트페테크부르크와 모스크바 모두 둘러보기로 했다. 반반씩 나눠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으니 이제 남은 여정을 위해 모스크바로 갈 준비를 서두른다.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 이후 1918년 새로 옮긴 수도이자 1922년 소련의 탄생과 함께 수도가 된 모스크바로 향한다.

20세기 냉전 시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모스크바는 2020년 1월 1일 기준으로 거의 인구 1270만명에 이르는 러시아 최대 도시이다. 러시아는 물론 유럽 최대이며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한다. 출발지 모스크바 역은 어느 역처럼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하다.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배경도 이 모습이었을 테지! 도착지 레닌그라드 역을 향하는 승객들과 함께 분주한 몸짓으로 짐을 싣는다. 건축 기념물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철도역은 대부분 19 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영화와 소설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한참을 서성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역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은 1840년대 건축가 콘스탄틴 톤이 설계한 동일한 디자인이다. 엇갈린 도시와 역의 이름을 두고 같은 외관의 역을 출발하는 기분은 묘하다.

러시아 문화 수도이고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고속 기차로 4시간 이동한다. 기차에서 점심을 즐기는 여유를 경험하고자 아침 기차에 몸을 싣고 졸음 가득한 눈으로 창밖 풍경을 즐긴다. 빠르게 스쳐지는 풍경이 무거운 눈꺼풀을 받치며 설렘 가득한 모스크바로 안내한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예쁜 금발머리 아가씨가 도시락을 건넨다. 승무원의 미소와 함께 차려진 객실에서의 점심은 또 다른 여행의 맛이다. 여유로운 기차 여행을 마치고 만나게 될 화려한 건축물과 풍부한 문화유산이 매력적인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도착한 레닌그라드 역은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역사에서 주는 포근함을 느끼기 전에 현대 도시 모습이 반겨준다. 역을 지나 이동하는 거리의 모습은 사진으로 익숙한 명소들이 아니라 어지러운 공사 현장들이다. 철의 장막이 붕괴된 이후, 매년 수십만 명의 여행객들이 예술, 역사 및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지만 수많은 전쟁과 혁명을 거친 모스크바는 과거의 도시에서 번영의 도시이자 국제적 도시로 거듭나기 위하여 변신 중이다.

크렘린 궁전과 성벽, 황금 교회 돔, 박물관과 미술관부터 현대적인 고층 건물까지 모스크바의 명소들은 도시의 역사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고 뒤엉켜 있었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기 어려운 어지러운 공사 현장을 지나치며 가이드 설명을 듣는다. 유럽 국가 수도들 중에서 철거했거나 철거 중인 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가 모스크바라고 한다. 게다가 다른 장소로 옮겨진 건물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단다. 스탈린의 모스크바 재건 사업에 따라 1930년대에 시작해 1983년까지 모스크바에서는 수많은 건물들이 ‘건물 이사’를 했다고 한다.

마침 확 트인 트베르스카야 거리로 들어선다. 지금 지나치는 거리 역시 1935년, 사회주의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모스크바 종합 재건 계획이었다고 한다. 재건 당시 이름은 고리키 거리였는데, 양쪽에 서있는 건물들의 파사드 높이를 맞추고 스타일을 통일시킴으로써 거리를 곧고 바르게 그리고 더 넓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크렘린으로 통하는 이 거리가 웅장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스크바 지도 위 고리키 거리 양편으로 붉은 직선이 그어졌고, 이 붉은 선을 넘어선 건물들은 철거되거나 이동되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거의 70채의 건물이 이동되었고 모스크바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이미 변화된 시내 거리를 지나면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얼굴을 마주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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