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와 감동을 담은 동화 ‘거짓말 경연대회’ ‘엄마의 걱정 공장’으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지훈 작가가 이번엔 ‘국립어른초등학교’(정용환 그림, 거북이북스)라는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을 동화로 구현시켰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이른 아침 학교 가라고 잠을 깨우는 엄마 목소리. 이불을 덮어쓰고 귀를 틀어막아도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짜증도 난다. 그럴 때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왜 엄마 아빠는 학교에 안 가지? 그러면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동화 속에서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세상이 변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열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어른, 어른다운 어른! 이런 모범이 될 어른을 양성하기 위해 국립어른초등학교를 신설합니다.”
대통령의 선포로 어른들도 초등학교에 다녀야 한다. 또 어른초등학교의 선생님은 바로 어린이들이 맡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라온이가 국립어른초등학교 어린이 선생님으로 뽑혔다. 이번 겨울방학 기간에 학교로 출근한다. 라온이 엄마와 아빠도 어른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른초등학교에 다녀야한다.
라온이는 선생님으로 출근하는 첫날 아침, 양은 냄비와 숟가락을 들고 엄마 아빠의 방에 들어가서 외친다.
“일어나세요! 일어나! 엄마 아빠 학교 가야죠!”
국립어른초등학교에서는 마음껏 어른을 가르치는 어린이 친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른들도 완벽하지 않다. 처음 하는 일엔 서툴고, 툭하면 실수를 한다. 모르는 것도 많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훨씬 잘 아는 것도 많다. 이제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칠 시간이다.
엄마 아빠는 물론 어른들을 가르칠 생각에 라온이는 잔뜩 신이 났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고 보니 만만치 않다. 무단횡단 하는 어른들,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어른들,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어른들 등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어찌나 많은지 앞이 캄캄하다. 이 어른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라온이는 한숨이 푹푹 나온다.
국립어른초등학교에는 시험도 있고 숙제도 있고 심지어 일기 검사까지 한다. 어른들에겐 사생활이 있다며 우겨 보아도 별 수 없다. 졸업하려면 교칙을 따라야 한다. 게다가 장기자랑대회에 가족뉴스 영상까지 만들어야 하니, 어른들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 귀한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싶어요? 정말이지 이런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잖아요!”
시험 통과에 실패해 나머지 공부를 하던 어른 몇 분이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감히 어른들을 가르치려 하다니!’ 화가 난 어른들은 더는 어른초등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결심한다. 똘똘 뭉친 어른들은 충격적인 일을 꾸민다. 어린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면서.
과연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이기고 어른초등학교를 없앨 수 있을까. 그런데 어른이 어린이를 이기면 무엇이 좋은 걸까. 공부하기 싫어하는 어른들과 기어코 공부를 시키려는 어린이 선생님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진다.

책은 어떠한 교훈도 깨달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즐겁게 상상하고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아이와 함께 어른도 읽으면 좋다. 마음이 뭉클해지고, 깊은 생각에 잠길 것이다. 역지사지가 바로 그건 것이다.
정용환 그림 작가가 하얀 백지와 까만 글 틈에 화려한 색감을 사용하여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과감한 구도로 역동적이게 묘사한 일러스트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캐릭터를 완성시켜준다.
작가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닌, 아이와 어른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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