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운 겨울이 오자 고슴도치들이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들었다. 하지만 몸을 녹이려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리게 되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떨어지면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없다. 고슴도치들은 서로 체온을 느끼려고 밀착했다가 가시에 찔려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여록과 보유’에 등장하는 고슴도치 우화이다.
쇼펜하우어가 고슴도치를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인간관계에서 애착 형성의 어려움이다. 인간은 외로움의 한기를 피하기 위해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침해당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처는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 가깝지 않으면 상대의 가시에 찔릴 위험도 없다. 어쩌면 친밀감과 자율성은 인간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일지 모른다.
사실 고슴도치는 늘 가시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를 보살펴주는 주인이나 친구에게는 가시를 등에 붙이고 있다가 깜짝 놀라거나 위협을 느낄 때에만 가시를 세운다.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바늘이 없는 머리 부위 쪽으로 맞대기 때문에 우화에서처럼 가시로 상대를 찌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 우화에서 다가서기와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고슴도치들은 결국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최적의 거리를 찾아낸다. 고슴도치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자 人間의 글자 속에는 '사이 간(間)'이 들어 있다. 인간은 서로 사이를 두고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 식물도 너무 밀착해 있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말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모든 관계는 거리를 전제로 생겨난다. 거리가 없으면 관계는 질식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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