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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공무직, 하청 취급… “공무원도 아닌데” 현장선 냉대 [탐사기획-위협 받는 ‘통계 첨병’]

, 탐사기획 - 위협 받는 ‘통계 첨병’

입력 : 2020-12-15 06:00:00 수정 : 2020-12-15 21: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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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따른 차별에 두 번 우는 조사관
공무원·공무직·계약직 처우 천차만별

조사인력 중 공무직·계약직 60% 달해
月임금은 공무원이 공무직의 2배 넘어
1년 미만 단기계약직도 최저임금 수준
“독감접종 지원까지 차별… 자괴감 들어”

재계약 때 불응률 등 반영… 고용 불안도
통계조사관 89.5% “처우 수준 불만족”

10년차 통계조사관 김모(46·여)씨의 통계조사가 1년 넘게 멈춰 있다.

 

지난해 10월 경남 거제시의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던 트레일러가 김 조사관이 타고 있던 승합차를 덮쳤다. 트레일러에 실린 철제 빔이 쏟아져 내렸고, 김 조사관이 머리를 크게 다쳤다. 사고 이후 두 달간 네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1년 넘게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1일 경남 통영에서 만난 김 조사관의 남편 조모(48)씨는 “갑작스러운 사고라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면서도 “앞으로 통계청에서 누군가 또 이런 사고를 당하면 차별 없이 똑같이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조사관은 거제시 농가를 돌며 ‘논벼 생산량 조사’를 수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타작을 앞둔 볍씨를 농가에서 수거해 실수확량을 가늠하는 조사로, 첫 번째 농가에서 볍씨를 받아 두 번째 농가로 이동하던 중 사고가 났다. 차에는 김 조사관을 포함해 동남지방통계청 통영사무소 직원 4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공무원 오모(58)씨도 두개골 골절 등 중상을 입었고, 김 조사관과 같은 공무직 통계조사관 조모(47·여)씨도 머리가 찢어지고 경추가 골절되는 중상을 당했다. 수시기간제 업무보조원 박모(53·〃)씨가 다행히 경상에 그치면서 119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똑같은 업무를 하다 같은 사고를 당했지만 이후에 벌어진 이들의 처우는 제각각이다. 공무원과 공무직, 기간제라는 신분 차이 때문이다.

 

무기계약직 신분인 공무직 김 조사관의 사정이 가장 딱하다. 김 조사관은 산재보상법에 따라 휴업기간 동안 급여의 70%만 지급받는다.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에 70% 휴업급여는 매달 300만원을 넘기는 김 조사관의 간병인 비용을 메꾸기에도 벅차다.

 

김 조사관이 생활하는 데 쓰이는 기저귀 비용부터 약값, 비보험 의료비 등 부대비용은 오롯이 가족 몫이다.

 

김 조사관이 속한 통계청 노조는 공무원과 같이 휴업급여라도 100%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무기계약직 공무직 통계조사관 신분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김 조사관의 남편 조씨도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운수일을 한다. 아내가 큰 사고를 당했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한동안 운전대를 잡은 채로 ‘아내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수시로 받았다. 조씨는 “하청은 원래 사람 취급을 안 하잖아요. 우리 아내도 통계청에서는 하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했다.

 

통계조사관을 무너뜨리는 것은 조사 현장에서의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성추행 같은 위험한 조사환경만이 아니다. 감정노동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는 고용 형태에서 오는 ‘차별’이라는 문턱도 있다.

세계일보가 인터뷰한 36명의 통계조사관 가운데 ‘통계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무기계약직 또는 기간제 근로자 신분에서 오는 조사 상황에서의 어려움과 임금 등의 처우, 조직 내부에서의 차별을 꼽았다.

 

“통계청 명함을 내밀면 먼저 ‘공무원이세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꼭 있어요. 공무원은 아니고, 공무직이라고 하면 ‘그럼 아르바이트예요’ 하면서 태도가 바뀌어요. 그게 참 힘들어요. 2∼3년 조사하는 내내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무원도 아니면서 이런 걸 왜 물어보느냐’, ‘공무원 데리고 와라’라고요. 통계청 안에서도 공무직을 같은 식구라고 생각 안 하는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안 새겠습니까.”<통계조사관 A(50·〃)씨>

 

“우리끼리는 갑을병정 중에 ‘정’이라고 해요. 조사현장에서 무시당하고 멸시받고 하는 것은 괜찮은데, 통계청 사무실로 돌아오면 공무원들과 또 차별을 당하고 무시를 당해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순간순간 부딪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조사현장에서 무시당하는 것보다 사무실에서 차별당하는 게 더 힘들어요.”<통계조사관 B(47·〃)씨>

 

통계청이 연중 실시하는 주요 통계조사(경상조사)는 공무원과 무기계약직 신분인 공무직 통계조사관, 기간제 근로자가 수행한다. 지난 9월1일 기준 통계청에서 현장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인원은 1921명이다. 공무원이 787명, 공무직 통계조사관이 1030명, 기간제 근로자가 104명이다.

 

공무원과 공무직 통계조사관, 기간제 근로자 모두 오전 9시에 전국의 지방청으로 출근해 오후 6시까지 현장조사 업무 등을 수행한다. 공무원은 통계조사 업무를 기본으로 전반적인 조사총괄 업무나 조사 결과 내검 업무 등을 맡는다. 공무직 통계조사관도 통계조사 업무와 조사 결과 입력, 내검 업무를 함께 한다. 현장조사 업무를 크게 공무원과 공무직이 나눠 하는 구조다.

같은 통계조사 업무를 하고 있지만 처우는 확연히 다르다.

 

14일 본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우원식·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통계조사관의 임금 및 수당 비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통계조사를 맡고 있는 공무원의 월평균 임금은 10호봉을 기준으로 412만3900원, 공무직 조사관은 10호봉 기준 198만9100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공무직 통계조사관 1호봉 기본급은 175만510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월 179만5310원에 못 미치는 액수다. 통계청은 기본급 외 정액급식비 13만원 가운데 최저임금 산입분 4만240원을 더하면 179만5340원으로 최저임금보다는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 30원이 더 많다.

 

위험한 조사환경, 불응가구 설득을 포함한 극도의 감정노동에 처해 있지만 실상은 최저임금을 겨우 받으면서 국가통계를 조사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급 외에 조사 대상자와의 유대관계 형성 등을 위한 ‘표본조사 관리비’ 15만원이 지급된다. 사업체 조사를 위해 옷가게에 방문하면 계절에 따라 옷을 하나씩 구매한다거나, 길게는 3년 동안 매달 만나는 조사 대상자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것이 조사관들의 설명이다.

 

기간제 근로자는 항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기간제 근로자는 1년 미만 단기계약직 근로자 신분으로 일급 6만8720원을 받는다. 마찬가지 최저임금 수준이다.

 

보통 통계청의 연간조사나 특별조사 업무 경험이 있는 도급조사원이나 앞서 기간제로 통계조사 업무 경험이 있는 조사원들이 기간제 채용에 지원해 근무한다. 그중에는 공무직 통계조사관으로 일하고 싶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수년째 기간제로 근무를 하기도 한다.

 

5년 동안 도급조사원,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C(44·〃)씨가 그렇다. C씨는 “그래도 무기계약직은 붙박이지 않으냐”면서 “매년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할 때마다 지원서류를 내고 면접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할당된 표본가구 조사를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며 “불응률이 높게 나오면 내년에 계속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항상 있다.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방청 사회조사과에서 일하고 있는 경력 11년 차 기간제 근로자 D(54·〃)씨는 사무실에서 겪는 차별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당연하다 싶은 것들이 안 될 때가 있다”면서 “최근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지정병원에 가서 독감예방접종을 맞는데 기간제 근로자는 굳이 또 제외되더라”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설문에서 통계조사관의 기본급, 복리후생 등 처우에 만족하는 수준을 묻는 문항에 ‘매우 만족’한다 0.1%(1명), ‘조금 만족’한다는 응답은 0.4%(81명)에 그쳤다. 반면 ‘불만족한다’는 49.0%(383명), ‘매우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40.5%(317명)이었다.

 

통영=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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