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촌 내 혈족 간 혼인 금지가 결혼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지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이처럼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데다 근친혼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에 맞서 외국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맞섰다.
헌재는 12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8촌 내 혈족은 혼인하지 못한다’는 민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진행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A씨 측는 이 자리에서 “해외 사례를 봤을 때 국내 민법상 근친혼 금지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4촌 이상 각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는 게 A씨 측 설명이다. 아울러 6∼8촌 사이의 혼인을 통해 낳은 자녀에게 유전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비근친혼인 일반 부부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또 “과거와 달리 혼인은 가(家)와 가(家)의 결합보다 인격 대 인격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8촌 내 혈족 혼인의 금지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타당한 윤리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론에 나선 이해관계인 법무부는 혼인의 자유가 가족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려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나아가 “유전학적 측면에서 근친혼에선 유전적 질병의 발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 인정되는 이상 이를 고려함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친족 관념 및 법감정을 존중하고 유전학적 고려까지 했다는 점에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근친혼이 제한되는 범위는 민법상 친족 범위에 한정되는 반면, 그 범위에서는 혼인 질서와 뒤섞이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입법상 공익이 상당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된다”고도 부연했다.
이날 변론에는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종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등이 의견을 냈다.
A씨 측 참고인인 현 교수는 “5촌 이상의 혈족 간 더이상 생활 공동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친혼 금지 범위를 4촌 내로 축소하는 게 타당하다”며 “근친혼은 혼인과 가족이라는 사회의 기초적 생활단위를 보장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도에서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 제도적 보장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개인의 자유를 무익하게 또는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피청구인인 법무부 측 참고인인 서 교수는 “외국 입법례에 비해 넓다고 해서 논리 필연적으로 위헌이라는 결론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와 함께 근친혼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는 공동체 구성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인 만큼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재량 사항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유럽 일부 국가에서 사촌간 혼인을 인정한 것은 딸들에게 재산을 상속해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문제까지 고려한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반드시 그걸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직권 지정 참고인인 전 명예교수는 “오늘날 가족·친족 개념에 변화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문중을 기반으로 상례나 제례가 유지·실천되는 한 ‘8촌이 곧 근친’이라는 관념은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하다”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혈족에 관한 인식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다고 인정된다면 8촌이 근친이라는 관념이 보편타당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8촌이 근친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혼례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해석된다. 또 “심판대상 조항이 외국 입법례와 같이 특정 인적 집단에 대해 근친혼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촌(寸) 개념을 사용해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며 “위헌성의 문제는 생물학적·유전학적 정설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변화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지역·사회계층 변동을 고려해 근친의 범위를 자세히 연구한 논문도 없다”며 ”그런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솔직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앞서 A씨는 2016년 5월 B씨와 혼인 신고를 했으나 B씨는 같은해 8월 “6촌 사이”라며 법원에 혼인 무효 소송을 냈다.
법원이”8촌 내 혈족 사이 혼인 신고이므로 민법에 따라 무효”라고 받아들이자 A씨는 항소했고, 재판 중 민법 809조·815조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 제청까지 신청했다.
A씨는 자신이 제기한 항소와 신청까지 기각되자 2018년 2월 위 법률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민법 809조 1항은 ‘8촌 내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며 근친혼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민법 815조에 따른 혼인무효 사유가 된다.
공개변론에는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청구인 측)와 서종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장관 측), 전경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직권지정 참고인)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견을 진술했다.
직권지정 참고인 전 명예교수는 “심판대상 조항이 외국 입법례와 같이 특정 인적집단에 대해 근친혼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촌(寸) 개념을 사용해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조항의 위헌성의 문제는 생물학적·유전학적 정설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변화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후 변론에서 청구인인 A씨 측 대리인은 “근친혼 금지조항에 따르면 상대방이 8촌 내 혈족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기간에 상관없이 혼인은 무효가 된다”며“청구인 또는 그 누구도 인격권 및 행복 추구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위헌 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법무부 측 대리인은 “근친혼의 범위를 어느 촌수까지 제한하면 위헌이고 그 이상이면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 가능한지 그 자체로 의문”라며 ”근본적으로 (헌법소원 자체가) 입법자의 입법재량을 침해한다”고 맞섰다. 더 나아가 “친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와 같은 입법례는 흔치 않다”며 “우리나라의 친족에 대한 개념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다른 입법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며 “국민의 문화적·심리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근친혼의 범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며 “그래도 그것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한 입법을 통해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번 공개변론을 토대로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 조항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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