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오후 7시쯤, 서울지하철 5·8호선 천호역에 내려 10여분을 걸으니 인파로 붐비는 번화가를 마주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니 지도 애플리케이션 상으로는 갈 수 있다지만, 높이 쳐진 탓에 고개를 들어야 하늘만 볼 수 있을 뿐,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철제 벽이 등장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찾은 이곳은 이른바 ‘천호동 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성매매 집결지 흔적이 남은 재개발 구역이다.
1980년대 조성되어 한때 200곳 넘는 업소가 들어서 과거 영등포, 미아리와 함께 ‘서울 3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렸지만,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면서 대부분 업소가 철거됐다.
지난해 5월 천호 1·2구역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 47개 업소에서 성매매 여성 70명이 일을 해왔다. 재개발이 시작된 이후에는 올해 2월에 4개 업소만 남았고, 성매매 여성은 15명으로 감소했다.
경찰은 마지막으로 남았던 성매매업소 4곳이 올해 8~10월 모두 폐업했다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그동안 인근 주택가에서는 천호동 집창촌에 대한 신고와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개 업소는 새로 개업까지 했고, 경찰은 집창촌의 규모가 다시 커지는 것을 우려해 올해 2월부터 ‘집창촌 완전 폐업’을 위한 회의와 집중관리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경찰은 올해 2월부터 최근까지 총 6회 단속을 실시해 11명을 입건했고, 건물주에게는 성매매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우편물을 보내는 작업 등도 진행했다.
거점근무를 추가 추진하는 등의 단속도 진행했으며, 성매매 여성 인권상담소(소냐의 집)와 성매매 여성 지원 간담회를 실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우회로를 거쳐 돌아가고서야 마주할 수 있었던 그곳에는 ‘공가’라는 쪽지만 붙은 채 휑하니 비어버린 업소들의 흔적만 있어서, 과거 사람들 발길이 머문 곳이었다는 것만 짐작하게 했다.
특히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라는 녹슨 팻말을 사이로 한쪽은 업소, 반대편으로는 높게 솟아 불빛이 반짝이는 건물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잔여 업체의 폐업 소식이 전해진 지 이제 보름 정도 지난 거여서 뚜렷한 변화는 없어 보이는 가운데, 경찰은 아직 이 지역이 빈 곳으로 남은 만큼 주민들의 안전과 불안 해소를 위해 순찰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천호동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는 게 일각에서의 반응이다.
이 동네에서만 약 40년을 살았다고 밝힌 한 주민은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어디로 가서 무엇을 먹고 일하며 살까 하는 생각을 혼자서 가끔 하게 된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신정인·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