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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에 ‘낙하산 소장’ 임명되나, 수상쩍은 자격 변경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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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07 09:00:00 수정 : 2020-11-07 11: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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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소재 국방과학연구소(ADD) 전경. ADD 제공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하던 1970년에 창설되어 한국군이 쓸 무기를 만든 핵심 연구기관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K-1, K-2 소총부터 현무 탄도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국방과학연구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국산 무기는 거의 없다. “우리가 만든 무기로 우리나라를 지키자”는 구호를 실현한 주역인 셈이다.

 

이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들과 그들을 이끈 소장의 헌신 덕분이다. 무기개발은 다른 연구와는 달리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진행된다. 지상과 공중, 해상 등에서 펼쳐지는 자연적 악조건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역경이 거듭되는 ‘고난의 행군’이다. 연구원들의 전문성과 애국심, 연구원들을 독려하고 프로젝트를 올바르게 이끌 소장의 리더십이 필수다. 국방과학연구소장의 중요성이 그만큼 큰 이유다.

 

이렇게 중요한 직위인 국방과학연구소장을 놓고 때아닌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지난 3일 소장직 공개 모집 공고를 냈는데,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이 제기되면서다.

대전 유성구 소재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앞에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응시 자격에 ‘방사청 고위공무원급’ 논란

 

국방과학연구소가 3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소장직 모집 공고에 따르면, 응시 자격은 △예비역 영관급 이상 장교로 국방정책 관련 부서 유경험자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고위공무원급으로 무기체계 획득분야 및 국방과학 기술 분야에 5년 이상 근무한 자 △과학기술 및 국방과학기술 분야 정부 산하 연구소 책임연구원급 이상 등이다.

 

‘방위사업청 고위공무원급’ 퇴직자가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지난달 말 방사청 차장에서 물러난 A씨를 의식한 행정조치라는 말이 나온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중인 스텔스 무인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A씨는 방사청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 방사청 내 요직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왕정홍 방사청장에 이어 조직 내 2인자인 차장을 지냈다. 최근까지 차기 방사청장이나 국방부 차관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지난달 사직했다. 

 

방사청 안팎에서는 A씨가 국방과학연구소장 공모에 응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으나, 실제 지원 의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응시자는 오는 13일까지 관련 서류를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지원본부 인사팀에 접수하도록 하고 있어 늦어도 이달 중순에는 응시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국방부는 “특정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특정인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서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 해명이야말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국방과학연구소장 임명을 놓고 벌어진 논란 때문이다.

한 연구원이 화학물질 등을 활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7년 5월 김인호 당시 소장의 임기가 끝난 직후 현 남세규 소장이 임명된 것은 같은해 12월. 7개월이 지나서야 신임 소장 인선이 이뤄졌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소장 모집 공고의 자격 요건이 ‘예비역 장성’에서 ‘예비역 영관급 장교 이상’으로 변경됐다. 국방부는 “문호를 넓힌 것”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지난 대선 당시 여권에서 활동했던 예비역 영관급 장교 B씨를 소장으로 뽑으려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코드 인사’ 논란이 증폭되자 소장 인선은 지연됐고, B씨 대신 남세규 현 소장이 임명됐다. 

 

2017년 당시 B씨의 내정 논란과 더불어 그를 밀었던 것으로 알려진 정부 내 특정 인물이 거론됐다. 이번에도 그때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정 논란 당사자들이 국방과학기술보다는 국방획득사업관리 분야 경력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어떻게 보길래 이런 논란이 재연되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출신이 산하기관장에 부임하는 관료적 특성을 과학기술 연구조직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전문성이 아닌 ‘라인 인사’냐”라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3일 대전 유성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첨단 무기와 군사장비를 시찰한 뒤 연구진과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대우받는 자리’가 아니다

 

국방획득사업과 국방과학 기술 개발은 차원이 다른 분야다. 

 

국방부와 방사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획득사업은 ‘관리자’의 영역이다. 실무자들이 업무를 맡고, 조직의 수장은 문제가 일어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규정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며 조율을 하면 된다.

 

반면 국방과학기술 개발은 다르다. 연구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변수 해결을 주도하고 개선과제를 제시하며 연구원들을 북돋아야 한다. ‘관리자’보다는 기술적 전문성과 지도력을 겸비한 ‘리더’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국방과학연구소장 공모를 둘러싼 논란은 우려스런 부분이 많다. 현 정부에서 국방과학연구소장을 ‘대우받는 자리’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전 유성구 소재 국방과학연구소(ADD) 전경. ADD 제공

국방과학연구소장은 명예로운 보직이다. 국내 군사과학기술 개발의 본산이며 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기관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널찍한 집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대외적인 행사에 참석해 찬사를 듣는 ‘대우받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보직보다 더 힘든 ‘일하는 자리’다.

 

역대 소장 중 가장 오래 재직한 심문택 소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1972~1980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이끈 심 소장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였다. 국방과학연구소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이경서, 구상회 박사 등 유능한 과학자를 영입해 연구역량을 강화했다. 율곡사업과 백곰미사일 개발을 이끌었으며 대전기계창, 진해기계창, 안흥시험장 건설 등을 주도해 오늘날 국방과학연구소의 기틀을 잡은 리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2.12 군사 쿠데타 직후 신군부에 의해 축출되고 만다. 연구소도 유능한 연구원들을 대거 잃는 등 연구역량이 크게 약화됐다. 이를 수습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심 소장의 사례는 국방과학연구소장을 둘러싼 명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군사과학기술과 지도력을 겸비한 인물이 국방과학연구능력을 크게 높인다면, 정치적 변수에 의한 인적 교체는 연구 역량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내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사청 차장 출신 A씨의 소장 내정설에 대해 국방과학연구소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은 대목이다.

남세규 현 국방과학연구소장이 ADD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70년 초대 국방과학연구소장에 신응균 예비역 중장이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남세규 현 소장에 이르기까지 예비역 장성(12명)과 과학자(6명)가 소장을 역임한 것도 정치적 변화에 관계 없이 연구개발을 이끌라는 의미였다. 특히 노무현정부 이후 과학자들이 소장에 중용된 것은 ‘연구소는 전문 연구원이 이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명박, 박근혜정부에서도 이어진 결과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같은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무기개발을 주도하는 연구소장이라는 본질 대신 ‘그럴듯한 노른자위 보직’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 군사기술개발에 한창인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기술연구를 위해 연구원들과 함꼐 머리를 맞댈 전문가 대신 관리자를 소장에 임명한다면, 국방과학기술 혁신은 말 그대로 공염불에 불과하다.

 

윤종성 성신여대 교수는 ‘징비록과 난중일기 교훈을 통한 국방무기개발 리더십 제고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무기개발과 관련 △현장방문 등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군사지도자의 관심과 배려 △정권에 관계없이 탁월한 인재 발굴과 연구원 처우개선을 통한 국방무기연구개발 기관 CEO 및 연구원들의 적합한 인재등용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방과학연구소장 공모가 정치적 고려에 상관없이, 탁월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 기용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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