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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공감산책] 차가운 날씨와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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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02 23:57:18 수정 : 2020-11-02 23: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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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사람 행동·심리에 영향
기온과 자살·범죄 관련성도
신체적 사회적 따뜻함은 연결
날씨 추워질수록 각박한 심리

갑자기 부쩍 쌀쌀해졌다. 겨울이 선뜻 다가온 거 같다. 공연히 마음이 스산해진다. 퇴근길에 집 근처 작고 아늑한 와인 바에 들러 한잔 하면서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모처럼 친구에게 연락해서 인심 좋은 고깃집 따뜻한 난로에 둘러앉아 소주 잔을 가운데 둔 수다가 그립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 만나기가 조심스러운 요즘 더욱 그렇다.

날씨가 추워지면 로맨스 영화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날씨가 더울 때보다 연인의 따듯함이 더욱 그리워지기 때문일 터다. 실제로 한 시험에서 사람들은 차가운 음료를 마셨을 때나 차가운 방에 있을 때 로맨스 영화를 더 선호하였다. 그러나 코미디나 드라마와 같은 다른 장르는 온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여름 동안 잠시 소원했던 사랑이 가을과 겨울에 더 깊어져 가는지 모른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

따뜻함의 개념은 감정적인 상태로 심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될 때도 심리적인 따뜻함과 똑같은 감정 상태가 만들어진다. 따뜻한 물체를 들고 있을 때나, 따뜻한 방에 앉아있을 때처럼 우리 신체가 따뜻해지면, 모르는 타인에게 친밀감을 보인다든지, 더 많은 도움 행동을 보이는 것과 같은 심리적 따뜻함을 작동시킨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 반응이 특정 감정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온도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실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날씨가 어떤가에 따라 신체활동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및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4∼8월인 봄과 여름에 가장 활발한 신체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더 온도가 높은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가장 더운 7월에 신체활동이 가장 적다.

그뿐만 아니라 온도는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은 시원한(16∼17°C) 방보다 따뜻한(24∼25°C) 방에서 특정 제품을 더 선호했다. 그리고 또 이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더 의존하여 구매자가 많거나 좋은 평이 달린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따뜻한 패드를 든 참가자들은 차가운 패드를 든 참가자들보다 그 제품에 대하여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나타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따뜻한 패드를 든 참가자들은 연구에 대한 보상으로 돈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74%였지만, 차가운 패드를 든 참가자들은 47%에 불과했다. 즉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고 각박한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온라인 쇼핑 포털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주변을 따뜻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체적, 사회적 따뜻함은 연결되어 있다. 춥고 서늘하다고 느낄 때보다는 따뜻하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대해지고 그 사람이 배려심이 깊은 좋은 사람이라고,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온도뿐 아니라 습도나 하루 일사량 역시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 습도가 높으면 집중력이 감소하고 졸음이 증가한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는 불안과 회의감을 감소시킨다. 그런가 하면 기온과 자살 및 자살 시도 사이에도 관계가 있다. 겨울에 자살 위험이 가장 높다는 주장과 겨울 이후 화사한 봄에 자살 위험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상반되지만, 분명한 것은 기온과 자살 간 관련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온도 변화와 폭행, 강도, 집단폭력, 가정폭력 및 성폭행 간 관련성에 대한 보고도 있다. 폭력범죄는 주변 온도(최소 섭씨 30도)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온도가 높아지게 될 때 짜증이나 분노가 더 크게 일어나고 결국 폭력까지 번지는 경우이다. 기온이 높을 때 음주 소비가 더 증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높은 온도가 가져오는 높은 습도는 불쾌감을 가져오고 결국 참을성을 감소시키거나, 좌절감을 일으켜 폭력이 더 빈번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이 살인까지 연결되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렇게 폭력범죄는 온도 상승에 따라 증가하지만 사기와 같은 재산범죄는 온도 변화와 상관이 없다.

무덥고 습한 여름이 끝나고 나서 오는 청정한 가을 공기에 사람들은 차분해지게 된다. 이성적인 판단도 증가하고 기억력도 향상되고, 기분이나 감정도 안정된다. 그런가 하면 낮아진 기온으로 인해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더욱 자주 느끼게 된다. 포르투갈에서 이루어진, 2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날씨와 휴대폰 통화량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었다. 지나치게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너무 불거나, 장마와 태풍에 시달리는 날씨에는 통화량이 줄어들었지만 쌀쌀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는 통화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낮아진 기온으로 체온이 떨어지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따뜻함 역시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제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가을은 짧게 머물다 지나고 겨울이 깊어갈 것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즈음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더욱더 각박해지고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좋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도 코로나19로 인해 여의치 않다. 잠깐의 통화, 짧은 문자 한 통만이 그나마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방법일 테지만, 이것만으로 춥고 긴 겨울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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