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버스킹 공연과 함께 그리스·이탈리아·미국으로 와인여행

어느새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고 흥인지문에 조명이 하나둘 켜지네요. 귓불을 스치는 싱그런 가을바람에 묻어오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신나는 드럼 소리. 그리고 와인 향기 한줄 코끝을 스치면 삭막하던 도시가 낭만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가을날 추억을 가슴에 아로새기는 ‘와인 러버’의 축제, 와인 앤 버스커의 한 장면이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사회를 잔뜩 움츠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모든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됐고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집콕’하는 시간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와인 러버들에도 올해는 매우 혹독합니다. 글라스에 벚꽃 잎 한두장 띄워 따사로운 봄날을 즐기던 워커힐 와인페어 구름위의 산책. 서울패션위크와 맞물려 동대문을 와인과 버스킹 그룹의 흥겨운 음악으로 가득 채우던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와인 앤 버스커. 낭만 가득한 가든 잔디밭에서 맛있는 바비큐와 즐기는 메이필드호텔 디오니소스 와인페어까지. 모든 와인 행사가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해 와인 러버들은 ‘홈술‘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오히려 와인소비는 더 늘었다는 얘기도 있군요. 재택근무가 늘고 집에서 편하게 마시다 보니 ‘술술’ 잘 들어가서 일테지요.

한겨울 처럼 움츠렸던 와인업계는 다행히 이제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아진 덕분입니다. 매년 대전을 와인의 향기로 가득 채우던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은 열리지 못했지만 국제와인기구(OIV)가 공인한 아시아 유일의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가 철저한 방역속에 지난 11∼14일까지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지난해는 26개국에서 심사위원 127명이 참여해 35개국에서 출품된 와인 4384종을 심사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 거주 심사위원이 단 한명도 한국을 찾지 못했습니다. 입국하면 2주간 격리해야하기에 방한 자체가 불가능했죠. 그래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심사위원 일부를 포함, 7개국 심사위원 81명만 참여해 29개국 3142종 와인을 심사해 그랑골드, 골드, 실버 메달 수상 와인들을 선정했습니다. 행사는 대폭 축소됐지만 빈티지 샴페인이 출품되는 등 심사 대상 와인들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입니다.

와인 페어도 드디어 시작됩니다. 와인 앤 버스커가 이번 주말 23∼25일 3일동안 열려 흥인지문을 다시 와인의 향기와 흥겨운 버스킹 공연으로 가득 채웁니다. 와이넬, 헬레닉와인, 올빈와인, 타펙스, 소울와인, 와인투유코리아, 모멘텀와인, 레드카이트, 제이와인, 장성그로벌 등 10개 와인 수입사가 100여종의 와인을 선보여 시음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헬레닉와인은 멋진 그리스 와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만듭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 형제들이 운영하는 와인수입사인데 늘 시음주를 넉넉하게 따라줄 정도로 한국 사람처럼 인심이 넉넉합니다. 형제들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을 꼭 닮았답니다. 그리스 와인은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좀 생소하죠. 하지만 한번만 마셔도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답니다. ‘포도품종의 쥬라기공원’으로 불릴 정도로 그리스 와인 품종은 4000종이 넘고 지금도 매일 새로운 품종이 발견된답니다. 그중에서도 시노마브로, 아씨르티코와 함께 그리스 3대 품종인 말라구지아로 빚은 와인을 꼭 마셔봐야합니다.

멸종되다시피한 품종을 살려낸 ‘말라구지아의 아버지’인 그리스 와인의 거장 에반겔로스 게로바실리우(Evangelos Gerovassiliou)가 빚은 와인들의 아로마틱한 향기에 흠뻑 빠져 지중해 마을의 바닷가에 서 있는 환상을 부릅니다. 와이너리 포르토 카라스(Porto Carras)에서 일하던 게로바실리우는 1975년 한 식물학자가 우연히 발견한 말라구지아를 접한 뒤 복숭아, 살구, 파인애플 등 풍성한 과일향과 아로마틱한 꽃향에 반합니다. 이에 1981년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 테살로니키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에파노미에 포도밭 2.5ha를 구입해 크티마 게로바실리우(Ktima Gerovassiliou)를 설립한뒤 본격적으로 말라구지아를 연구한 끝에 1992년 개량된 지금의 말라구지아를 완성합니다. 현재 포도밭은 56ha가 넘을 정도로 커졌고 산토리니 품종 아시르티코와 마부르디, 마브로트라가노 등 대표적인 그리스 품종을 비롯해 국제 품종인 샤르도네, 소비뇽블랑, 비오니에, 시라, 메를로 등도 재배합니다.

따뜻하고 온화한 지중해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 낮과 밤의 큰 일교차, 건조한 그리스 날씨는 포도를 맛있게 익게 해주는 천혜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중 말라구지아는 그리스 와인들이 기본적으로 지닌 솔티한 미네랄과 풍부한 과일향이 만나 이제 전세계 와인러 버들의 사랑을 받는 품종이됐답니다. 크티마는 프랑스에서 보르도에서 샤토(Chateau), 부르고뉴에서 도멘(Domaine)으로 부르는 것처럼 와이너리를 뜻해요.

말라구지아 100%로 빚는 게로바실리우 말라구지아는 초록이 가미된 선명한 볏짚 색을 띠며 배, 망고 등 과일향과 감귤 등 시트러스 계열의 산도가 산뜻합니다. 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솔티한 미네랄이 뛰어나 김치찌개, 돼지고기 두르치기 등 매콤한 한국음식과 잘 어울리고 삼겹살의 느끼함도 잘 잡아줍니다.

게로바실리우 화이트는 말라구지아와 산도가 아주 뛰어난 아씨르티코(Asyrtico)를 섞었는데 말라구지아의 우아한 아로마와 아씨르티코의 기분좋은 산도가 완벽한 조합을 이룹니다. 레몬, 오렌지, 자스민, 멜론 등 과일향이 비강을 채우며 매콤한 한국음식은 물론, 신선한 조개와 굽거나 찐 생선, 크림소스를 얹은 파스타, 그리스 페타치즈를 얹은 토마토 샐러드와 좋은 궁합을 보입니다. 게로바실리우 화이트 2019 빈티지는 올해 디켄터에서 플래티넘을 수상했고 프랑스 비날리 인터내셔널(Vinalies International)에서는 골드를 받아 그 진가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새로 들여온 마그마 팻낫(Magma Petnat) 내추럴 스파클링도 선보입니다. 모스카토 60%를 베이스로 말라구지아와 시노마브로를 반반씩 블렌딩했는데 발효가 끝나기전 병에 담아 숙성까지 시킵니다. 복숭아, 베리류의 과일향과 뛰어난 복합미를 지녔습니다. 또 시라 100%로 빚은 카타로스 에스테이트의 발로스(VAlos), 프랑스 북부론에 많이 사용하는 레드 품종 시라 92%에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를 섞은 아반티스 에스테이트의 아기오스 크로노스(Aigios Chronos),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이오에스 사모스의 환상적인 디저트 와인 사모스 넥타르(Samos Nectar)도 소개됩니다.

매년 ‘아트 인 더 글라스’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와이넬은 16세기 유럽 왕실에서 애용하던 판티니(Fantini) 그룹의 와인들을 선보입니다. 이탈리아 와인을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판티니는 1538년 파네세가의 왕자와 결혼한 오스트리아 여왕 마르게리타(Margherita)가 아브루쪼 지역의 오르토나(Ortona)와 파르네토(Farneto)의 풍광과 기후에 매료돼 와인을 생산한 것이 판티니 와인의 시초이니 5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와인을 빚은 셈이죠. 지금은 아브루쪼를 중심으로 남부 이탈리아 와인의 핵심지역인 뿔리아, 깜빠니아, 바실리카타, 시칠리아에서 보석같은 와인들을 생산합니다.
판티니 그룹은 1990년대 후반 아브루쪼 지역과 뿔리아 지역의 품종을 블렌딩 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이렇게 탄생한 와인이 판티니 에디지오네(Fantini Edizone)입니다. 2015년 베를린와인트로피 금상 등을 받은 에디지오네는 몬테풀치아노, 프리미티보, 산지오베제, 네그로아마로, 말바시아 네라를 절묘하게 블렌딩했습니다. 블랙체리, 블랙커런트 등 짙은 검은과일 느낌이 주를 이루고 허브, 시나몬, 정향, 감초 등의 향신료가 더해지며 마지막에는 코코아 힌트로 오랜 피니시가 이어집니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도 소개됩니다. 산지오베제 100% 와인으로 잘 익은 체리와 딸기, 서양자두, 다양한 꽃의 아로마와 로즈마리 등의 향신료가 어우러지고 가죽향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올빈와인은 로르나노(Lornano)의 키안티 클라시코 그랑 셀렉지오네 와인을 들고 나옵니다. 그랑 셀렉지오네(Grand Seleczione)는 이탈리아 와인의 생산지 규정인 DOCG의 최상단 등급입니다. 블랙베리 향이 두드러지고 부드러운 타닌과 뛰어난 산도, 잘 익힌 산지오베제에서 풍기는 얼씨한 흙내음과 가죽향이 매력입니다. 200년 역사의 포르투갈 와이너리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가 빚는 가성비 끝판왕 랜서스 화이트(Lancers White)도 맛볼수 있습니다. 레몬, 라임, 바나나 등의 과일향과 약간 단맛으로 마무리되는 피니시는 매콤한 한국음식과 멕시코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버스킹 공연은 솔직히 송아지, 아홉달, 삼뚠, 점잖은 원숭이들, NEP8, 발라듀엣, 주말오후, 무드등, 박지은 및 DJ H3Lix(헬릭스)가 무대를 채웁니다. 버스킹 밴드 및 DJ 공연은 23∼24일은 오후 6시∼오후 9시 40분, 25일은 오후 6시∼8시 40분에 만날 수 있습니다. 행사는 23일 오후 5시∼오후 10시, 24일 오후 2시 ~ 10시, 25일 오후 2시 ~ 9시까지가 진행되는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23일은 오후 5시와 오후 8시 2부제로, 24일 25일은 오후 2시, 오후 4시30분, 오후 7시에 입장하는 3부제로 운영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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