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면허 10대 렌터카 운전에…꽃다운 조카 숨져”
지난 1일 추석 당일 오후 11시40분쯤. 전남 화순군 화순읍 편도 2차선 도로에서 A군(18)이 몰던 렌터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B씨(21·여)를 들이받았다. B씨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A군은 사고 직후 피해자 구조조치는커녕 광주까지 그대로 20㎞가량을 달아났다가 1시간여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동승자였던 또래 친구가 30대 남성의 카셰어링 앱(애플리케이션·응용소프트웨어) 계정으로 렌터카를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A군의 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카셰어링 앱 계정을 빌렸다. 차량 대여비 명목으로 18만 원을 송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차량에는 운전자 A군을 비롯해 동갑내기 친구 4명이 동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브로커로 추정되는 인물이 차량 대여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앱 계정 명의자인 C씨를 붙잡아 자백을 받아냈다. 조사 결과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브로커 추정 인물로부터 3만원을 받고 앱 계정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3일 A군을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C씨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피해자의 친척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올린 글이 올라왔다. ‘추석날 무면허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 스물두살 조카를 죽인 10대 가해 운전자와 동승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11일 오후 2시까지 18만3800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가족과 함께 웃으며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내야 할 시간에 저희 가족 모두는 조카의 뺑소니 사망으로 장례식장에서 울음바다로 명절을 보내야 했다”며 “조카의 시신 옆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고 있는 엄마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죽은 조카만 보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있나 싶었다”고 적었다.
이어 “10대 고등학생 무면허 운전자와 동승자 4명이 렌터카 차량으로 제한속도 30㎞의 구간을 과속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조카를 충격하고 그대로 도주했다”며 “사고영상을 보니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이런 차에 치였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속상한 것을 넘어 가해자들에게 분노가 차 올랐다”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왜 법을 지키며 착하게 사는 사람은 이런 피해를 당하는지, 범법을 저지른 사람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적절한 처벌을 받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자꾸만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고등학생이 렌터카를 운전하게 됐는지, 고등학생에게 차를 대여해준 자도 뺑소니범과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아니 더 강력히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해자 측이 어떤 사과도 없었다면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부탁드린다. 뺑소니는 살인자나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법의 불비로 인해 동승자 및 렌터카 대여 주체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린다”고 글을 마쳤다.



◆“이건 아니잖아요”
10대들의 무면허 렌터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달 1일에는 10대 6명이 충남 천안 고속도로에서 렌터카를 타고 순찰차와 20분여간 추격전을 벌이며 경기 안성까지 이동, 국도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후에야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같은달 15일 광주 광산에서도 17살의 남학생이 무면허 렌터카 운전 중 교통법규를 단속 중인 경찰을 발견했고, 이를 피해 달아나다 다른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전남 목포에서는 고교생의 렌터카 운전 사고로 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3일 밤 목포시 상동에서 발생한 사고로, 렌터카에 탑승한 고교생 운전자와 동승 고교생, 상대차 운전자 등 3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10대 청소년 무면허 교통사고가 총 3301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91명이 사망하고, 4849명이 다쳤습니다. 최근 5년간 10대 무면허 렌터카 교통사고는 총 405건이 발생해 8명의 사망자와 722명의 부상자가 나왔고요.
박재호 의원은 렌터카 업체가 차량을 대여해주기 전 운전면허 상태의 정상 여부를 조회하고는 있지만 이용자 본인 확인 절차가 없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 의원은 “10대들에게 면허 없이 렌터카를 빌리는 행위가 큰 범죄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며 “운전면허 확인 시 휴대폰 등을 통한 본인인증 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0대들의 무면허 렌터카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유사 사고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10대가 면허증 등 신분증을 도용하는 경우 업체 측 판단에만 맡겨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또한 최근 대면 렌터카 사업이 아닌, 비대면 자동차공유 업체의 경우에는 1인 1단말기 계정 사용 의무화를 통해 미성년자가 부모의 계정을 이용해 대신 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면허가 없는 10대들의 차량 운전을 막을 제도를 보완하는 대책 마련을 서둘러, 더이상 B씨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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