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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동네 은행’… 불편은 오로지 고객 몫?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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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10 10:00:00 수정 : 2023-12-10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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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경쟁·디지털 강화·합병 이유
시중 은행들 앞다퉈 지점 줄이기 나서

입출금 출장소 늘리는 식으로 공백 메워
“ATM 찾아 버스 타고 다른 동네까지…
적금 가입 등은 상담 필요한데 난감”

인터넷 익숙치 않은 어르신들 한숨
전문가 “모바일 교육·수수료 인하 등
보상 통해 소비자 불편 해소 노력해야”

인천 송도에 사는 30대 중반의 김모씨는 지난해 초 자주 다니던 단지 내 상가 은행에 붙은 공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번화가에 있는 다른 지점과 통합돼 상가 은행이 곧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남아 있으니 이체거래는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사라져 황당해했다. “ATM을 ‘당분간’ 둔다는 공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당분간이 정말 짧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ATM이 없어진다는 공지는 보지도 못했죠.” 김씨는 급히 현금이 필요해서 습관처럼 갔다가 ATM 없는 텅 빈 자리를 보며 한숨 쉬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김씨는 걸어서 5분이면 가는 은행을 버스를 타고 15분을 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그래서 김씨는 그동안 휴대전화에 설치만 해두고 쓰지 않았던 모바일뱅킹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은행 갈 일이 거의 없지만 적금 가입은 지점에서 직접 상담받는 걸 선호하는데 그럴 때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60대 후반의 이모씨는 항상 현금을 지갑에 넣어둔다. 친구들 모임에서 회비 내고 손주들 용돈을 주려면 필요해서다. 그런데 최근 집 앞 은행이 있던 자리에 인테리어 업체가 들어왔다. 이씨는 돈을 찾으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나간다. 집 근처 상가 편의점에 ATM이 있지만 수수료가 나와서 이용을 꺼린다. 가족들이 “버스비가 더 나온다”고 설득해도 이씨는 지점까지 가는 게 마음이 놓인다. 이씨의 딸(30)은 “엄마가 구식 핸드폰을 가지고 계시는데 모바일뱅킹 이용하시라고 스마트폰을 사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은행 점포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00년 ‘인터넷 뱅킹’이 국내에 처음 도입되면서 예고됐던 일이다. 처음엔 변화가 더뎠다. 하지만 정보통신(IT)기술 발달과 함께 인터넷·모바일뱅킹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면서 은행 점포 감소에 가속도가 붙었다.

 

◆7년 만에 5개 중 1개 사라져

 

9일 각 은행에 따르면 일반은행(시중·지방)과 특수은행을 포함한 국내은행 점포(지점·출장소)는 2013년 7599개에서 지난해 말 기준 6714개로 885개 줄었다. 이 중 814개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한국씨티) 점포였다.

특수은행(기업은행, 산업은행, 농협 등)은 점포를 많이 운영하지 않아 감축폭도 2029개에서 1993개로 적은 편이다. 지방은행은 고령층 내점고객이 많아 점포를 급격히 줄이기 어렵다.

 

시중 은행들이 점포를 감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은행 합병에 따른 것이다. 하나은행이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점포 통폐합을 단행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하나·외환은행이 통합된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점포 261개를 없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 두 곳이 하나의 이름을 쓰게 되면서 같은 지역, 심지어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은행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생겨났다”며 “그런 곳들을 정리하는 과정 때문에 숫자상 가장 많은 점포 수를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점포 감축의 주된 이유는 효율성 제고다. 은행업무 중 상당 부분이 비대면으로 가능해지면서 모든 점포를 전과 같은 규모로 운영하는 것은 은행으로선 마이너스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가장 공격적으로 다운사이징에 나선 건 한국씨티은행이었다. 씨티은행은 2017년 비용절감으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디지털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을 단행했다. 133개였던 점포를 무려 3분의 1 수준인 44개로 낮췄다. 2018년 한 곳을 더 줄여 올해 8월 기준 43개 점포를 유지하고 있다.

 

씨티은행은 점포 수는 줄었지만 규모는 커졌다고 한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고액자산 고객이 많은 특성상 자산관리 부문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디지털 금융환경으로 변화에 선제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면서 “현재까지 규모와 실적 면에서 목표대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리딩뱅크를 다투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몸집 줄이기로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2013년 1151개 점포에서 지난해 1049개로, 신한은행은 944개에서 877개로 축소했다. SC제일은행은 254개에서 212개로 줄였다.

 

몇몇 은행들은 지점을 줄이는 대신 입출금 등 간단한 업무만 취급하는 출장소를 늘려 공백을 메운다. 국민은행은 지점을 2016년 1003개에서 지난해 881개로 줄이고 출장소를 125개에서 168개로 늘렸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지점을 763개에서 738개로 줄이고 출장소를 109개에서 139개로 늘렸다. 우리은행과 씨티은행도 각각 3개, 1개 출장소를 증설했다.

◆올 들어 가속하는 점포 폐점

 

올해 들어 은행들은 점포 다이어트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시중은행 점포 134개가 사라졌다. 국민은행이 52개, 하나은행이 51개를 폐점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SC제일은행도 각각 10개, 17개, 4개 점포 문을 닫았다. 신도시 등에 신설된 점포 11개를 고려해도 상반기에만 123개 줄어든 것이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줄인 점포 수 50개의 약 2.7배다.

 

이런 급격한 폐점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약진과 핀테크 기업들의 도전에 따른 금융환경 변화 영향이 크다. 100년을 지켜온 전통은행의 영역을 내어줄 위기에 처하면서 은행들은 디지털화에 사활을 걸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급속 확산해 은행들이 많은 수의 점포를 유지할 이유가 더욱 희박해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해 고객들의 비대면 금융서비스 요구가 커졌다”며 “은행 점포도 축소와 특화 점포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 점포는 내점고객 감소에 따라 일반업무는 줄고 자산관리 상담 중심의 점포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점포 폐점 속도가 빨라지자 금융당국은 제동을 걸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7월 말 “은행들이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를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를 의식한 듯 시중 은행들도 일단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국민, 신한, 하나 등은 “올 하반기 점포 통폐합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편은 오로지 고객 몫…“보상 필요”

 

은행이 사라지면 해당 지점을 이용하던 고객들은 당연히 불편해진다.

 

고령층 등 일부 금융소비자들은 여전히 대면 거래와 현금 이용을 선호한다. 소수라 하더라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점포를 줄여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윤 금감원장은 “은행의 점포 폐쇄로 인해 금융소비자, 특히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의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초래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은행권도 점포 통폐합에 따른 고객 불편 최소화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4월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를 마련했다. 점포 폐쇄 이전에 영향평가 실시, 대체수단 결정해 운영, 점포 폐쇄일 최소 1개월 전부터 폐쇄 대상 점포 이용 고객에 안내 등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은행들은 “점포 폐쇄 시 공동 절차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고객은 해당 조치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느낀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60대 A씨는 “자주 이용하던 동네 은행 출장소가 없어졌다”며 “다른 데로 통합되니 이제 그쪽으로 다니라고 한 게 전부다. 내가 그 은행만 30년 거래했는데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소비자단체들은 점포 감축으로 고객이 겪는 불편에 은행들의 공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일부 금융소비자, 특히 고령층은 대면 거래를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인터넷이나 모바일 방법을 알려줘도 기어코 지점을 찾아간다”며 “이런 분들에게 지금의 방식은 불편을 줄이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보상이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해 준다든가, 모바일뱅킹 교육을 한다든가, 이동점포를 운영하는 것 등 다양한 노력을 보인다면 소비자들은 조금 불편해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업 디지털화 속도는 너무나 빠른데 고객의 변화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해 불편이 생긴다”며 “한 달에 몇 번씩 은행을 가는 고객이 많지 않은데 한 달 전부터 공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어느 날 필요해서 갔을 때 ‘갑자기 없어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폐점 공지 및 불편 감소를 위한 안내를 문자,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고객들이 ‘언제부터 주거래 지점이 어느 곳으로 통합된다’는 공지를 확실히 받으면 ‘내가 관리받는 고객’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불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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