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완벽주의 긴밀한 관계 설명
과도한 책임·성취감에 시달리는 이들
소중한 삶 흔들릴까 심리적으로 불안
자신의 나약함·욕망 등 다양한 감정들
연민의 눈으로 받아들여야 치유 첫걸음

괜찮다는 거짓말/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송성별/북하우스/1만7000원
겉으로 보면 무척 잘 지내며 밝고 빈틈없는 사람인데 아슬아슬할 때가 있다. 무너지기 직전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괜찮다, 아무 일 없다”고 말한다. 사실 괜찮은 게 아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 박사가 25년간 우울증의 다양한 양상, 그중에서도 우울증과 완벽주의의 긴밀한 관계에 파고든 끝에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Perfect Hidden Depression)’이란 용어를 만들고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우울의 실체와 그 연구 결과들을 ‘괜찮다는 거짓말’에서 설명한다. 많은 환자와 내담자를 만나며 연구한 이 개념을 통해 구체적인 증상과 사례를 설명하며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당사자들의 치유를 돕는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내털리는 직업상 큰 성공을 거두었고 유명했으며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 성실하기 그지없이 임했고, 아이들에게는 세심하고도 열성적인 어머니였다. 아이들 학교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봉사활동을 했다. 그런 그가 아무 전조도 없이 술과 약물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심리치료사에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집안일에 끝없이 시달린다고, 특히 남편이 출장을 자주 다니게 된 뒤로 고단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 했을 뿐이다. 그녀는 우울하다기보다 불안하고 바짝 긴장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저자가 사례로 든 내털리의 자살 시도는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을 보여주는 강력한 각성 신호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그는 자신이 남들은 모르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끊임없이 수치심을 안겨주는 내면 속 비난의 목소리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만들게 된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남모르는 심리적인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저자는 책에서 과도한 책임감과 자신을 고양할 수 있는 성취감을 찾아 과제에 매몰되는 모습, 타인이 자신의 내면에 접근토록 허용하지 않는 태도 등의 특징을 제시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일상이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지고 스스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 증상자들의 호소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서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놀랍기까지 하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공식 진단명이나 정신장애가 아니다. 우울증을 가릴 수 있는 증후군을 가리키려 만들어낸 용어다. 잘 알려지지 않는 이 우울을 지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태껏 소중하게 꾸려온 삶을 흔들어 감추어왔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통제력을 잃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치유를 위해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자기를 수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 내보일 때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감정을 절제하지도 숨기지도 않게 된 스스로가 낯설고 불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수치심, 억울함, 질투, 화,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나 욕망까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감정들의 존재에 연민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현실적인 수준에서 안정적인 괜찮은 생각, 감정들과 다시 연결하고 대신 단단하게 받쳐 준다는 안정감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약함, 약점, 잘못도 나의 일부이며 필수적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치유의 과정이 시작된다.
저자가 2014년 제안한 이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증’ 개념은 많은 이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심리학계와 SNS를 뜨겁게 달궜다. 겉으로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무너지고 괴로워하는 이들의 심리적 문제를 탁월하게 설명하고 분석한 책으로 꼽힌다.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추천사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괴로운 감정을 표현해도, 아플 땐 아프다 이야기해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며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준다. 실수가 싫고, 아픈 게 뭔지도 모른 채 책임감만으로 혼자 짊어지고 가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고 썼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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