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의날 기념식은 일반 관람객과 군인들이 현장에서 즉석 연출한 카드 섹션과 3군 군악대의 팡파르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육·해·공군 및 해병대, 특전사, 예비군 및 학군단, 기계화부대에 대한 열병과 특전요원들의 고공 및 집단 강하, 태권도시범, 육군항공사 소속 헬기 선도비행에 이은 공군 전투기의 공중 분열 순서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1990년 10월1일 거행된 건군 제42주년 국군의날 행사를 전한 조간신문(10월 2일 자)의 한 대목이다. 카드 섹션을 일반 관람객과 군인들이 현장에서 즉석 연출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향토사단과 동원사단 장병이 뙤약볕 아래에서 쌍욕 들으며 몇 달씩 반복한 연습의 결과였다. 카드 섹션도 수많은 장병의 엄청난 노고의 결과였으나, 행사의 꽃인 열병식(閱兵式)에 참가한 도보 부대 등에 비할 바는 못 됐다.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그해 국군의날 행사를 위해 9월15일 여의도 상공에서 고공낙하훈련을 하던 특전사 여군 하사가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22세 나이에 순직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열병식의 화려함 뒤엔 군 장병의 피와 땀이 있다.
군사 퍼레이드라고도 부르는 열병식은 고대부터 군사력을 과시하고 통수권자의 권위를 부각하는 행사다. 현대에는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이 열병식에 진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 후 좀처럼 대규모 열병식을 볼 수 없는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79번째 생일이자 육군 창설 250주년인 지난 6월14일 거행돼 화제를 모았다.
일본이 1951년부터 해온 열병식을 앞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열병식을 하려면 전국에서 병력과 장비를 한곳에 집결시켜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활동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자위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일본은 그동안 육상자위대의 관열식(觀閱式), 해상자위대의 관함식, 항공자위대의 항공관열식을 매년 번갈아 개최했다. 관함식에 참가하는 한국 해군 함정의 욱일기 경례 논란도 사라지게 됐다. 일본이 밖으로 힘을 드러내는 허세보다는 방위태세를 강화하는 실사구시적 선택을 했다는 점을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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