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의 간판급 전기차 모델인 코나EV의 잇단 화재 원인이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기울었다. LG화학은 자사 배터리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정부 발표를 단호하게 반박했다.
LG화학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이어 전기차(EV) 화재 사태까지 자사 난징(남경)공장 출고 배터리가 원인으로 지목되자 더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책임 공방이 길어지면 현대차가 LG화학 배터리 의존도를 낮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차는 2015년 품질 이슈에서 이견을 보인 특정 타이어 업체와 거래를 끊는 것으로 대응한 전례가 있다. 현대차는 정부 명령에 따라 16일부터 시정조치(리콜)에 돌입한다.
◆국토부 “배터리 분리막 손상이 원인”
국토교통부는 차량 충전 완료 후 코나 전기차에서 고전압 배터리의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자동차안전연구원(CATRI)의 결함조사 결과 제조 공정상 품질불량으로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에 있는 분리막이 손상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은 작년 8월 주차해둔 코나EV 3대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자 자동차안전연구원에 제작결함 조사를 의뢰했다. 교통안전공단은 자동차안전연구원이 국내에서 발생한 9건을 현장조사 및 정밀검증하고 배터리 88개에서 결함 원인을 분석해왔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 차량은 2017년 9월29일부터 올해 3월13일까지 제작된 차량 2만5564대다.

현대차는 리콜 대상 차량이 입고되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S)를 업데이트한 뒤 배터리 셀 간의 전압 편차나 온도 변화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지 등 배터리 이상 징후를 검토해 불량으로 판단되는 배터리를 교체한다는 입장이다. 또 불량이 아니어도 업데이트한 BMS의 상시 모니터링 과정에서 추가로 이상 변화가 감지되면 충전 중지와 함께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제한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경고 메시지를 소비자와 긴급출동 서비스 콜센터(현대차)로 자동 전달한다고 부연했다.
코나EV에 탑재된 고전압 배터리 체계는 총 294개의 셀로 이뤄진다. 이 셀을 57∼60개씩 묶은 것이 팩이고, 이 팩 5개에 BMS와 냉각 시스템을 결합하면 배터리시스템어셈블리(BSA)가 되는데 이 모듈 형태 부품을 코나EV 뒷좌석 아래에 장착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불량 배터리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견된 팩 단위를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LG화학 “국토부, 원인 규명 없이 발표”
이날 LG화학은 국토부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 ‘제조 공정상 품질 불량’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내수용 코나EV에는 전량 LG화학 배터리가 들어간다. LG화학은 “국토부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했다”며 에두르지 않고 발표 일체를 부정했다. 이어 “현대차와 공동으로 실시한 재연 실험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분리막 손상으로 인한 배터리 셀 불량이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현대차와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이번 현대차의 자발적 리콜과 별개로 화재재연시험 등을 통해 리콜 계획의 적정성 등을 검증하고, 필요하면 보완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는 발화 이유로 ‘배터리 내 합선’을 확정한 모습이다. LG화학 배터리를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전환한 셈이다.

분리막은 배터리 안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다. 정부와 현대차, LG화학은 이 분리막 손상이 어느 공정 단계에서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지 등을 가려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까지 규명이 돼야 현대 전기차 사업과 LG 배터리 사업의 미래에 드리울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리콜에 따른 비용 정산도 가능하다. 공정 별로 배터리 셀은 LG화학, 팩은 HL그린파워(LG화학과 현대모비스 합작사), BMS는 현대케피코(현대차그룹 산하 자동차 전자제어시스템 전문기업), BSA는 현대모비스가 만든다.
LG화학이 쓰는 분리막이나 코팅 기술에도 관심이 쏠린다. LG화학 관계자는 “코나EV에 사용된 분리막은 2019년부터 중국 상해은첩(Semcorp)이 전량 공급 중이며 이전에는 일본 도레이 제품을 썼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지난해 5월 상해은첩과 7300억원 규모의 습식 분리막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분리막은 베이스 필름으로 여기에 LG화학의 독자 코팅 기술이 적용돼 배터리 제조에 사용된다.
◆현대차-LG화학, 치열한 공방 예고
국토부의 이날 발표는 국감에 맞춘 흔적이 역력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제작결함 조사는 작년 9월부터 1년 넘도록 이어졌고 올 연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조사를 의뢰한 교통안전공단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화재가 다시 나고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전격적인 발표가 이뤄졌다. LG화학이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고 거칠게 반박한 한 배경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차는 지난 5일 고객에게 보낸 안내에서 ‘10월 내’라고 시점을 못 박았다. 현대차 스스로도 몹시 이례적이라고 했지만 화재 원인 분석이 어느 정도 끝났다는 정보,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조사는 양사 모두 참여한 가운데 작년 9월부터 1년 넘도록 이어졌다.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배터리 모듈에서 열이 나는 부품은 셀 외에 없다는 점 △코나EV 화재 형태가 흰 연기 배출 후 폭발하듯 불타는 배터리 화재의 전형이란 점 △내수용 코나EV와 사실상 같은 팩, 모듈을 쓰고 있는 현대∙기아차 전기차 모델 중에서 SK이노베이션 셀을 쓰는 코나EV 유럽향과 니로EV, 쏘울EV에선 화재가 보고된 적 없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화재 2건 감식결과 “배터리 내부 ‘절연파괴로 인한 열폭주(과전류로 인한 스파크 현상) 가능성”이 지목된 점 등에서 이번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LG화학이 국토부 발표 일체를 반박한 것은 치열한 책임 공방을 예고한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는 말을 아꼈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보신 현대차 생산품질담당 사장은 “기술상, 제작상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책임을) 인정한다”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솔루션은 일부 찾았으며 리콜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서 사장 답변처럼 자동차 제작결함은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의 책임이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책임을 미루듯 외부에 비춰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하지만 LG화학 입장을 접한 현대차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취지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차는 품질 이슈에 매우 민감하다. 수천만∼1억원이 넘는 고가에다가 2만여개 부품으로 이뤄지는 제품 특성상 품질 논란과 비판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사업 초기 미국 등에서 조롱받던 아픈 기억을 딛고 각종 품질조사에서 최상위권을 휩쓰는 등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중이다. 내연기관을 대체할 전기차에서 주력 모델의 화재는 악몽 같은 일이다.
LG화학 역시 물러서기 어렵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시장은 올해 850만대에서 10년 뒤 3700만대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 시장에서 중국 CATL에 이어 2위에 랭크돼 있다. 코나EV 화재는 25년간 준비해온 미래산업이 빛을 보려는데 터진 악재다. 올 연말 현대차의 E-GMP 기반 차세대 전기차용 3차 배터리 발주 등 미래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정면승부를 벌일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다.
업계에서는 “ESS에서 못 밝힌 화재 원인을 코나가 밝혔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은 국토부란 다른 운동장이다. 현대차는 2015년 신형 제네시스(BH)를 출시했다가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로 4만여대를 리콜한 이후 책임 소재에서 이견을 보인 한국타이어(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거래를 끊고 지금까지 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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