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만이 옳다는 오만과 독선
공정과 정의의 가치 훼손시켜
민주주의 후퇴에 국민들 분노
누구나 공정과 정의를 말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인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사실 공정과 정의라는 추상적 가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는 것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더 나은 삶,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산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냐를 묻기보다는 현재의 공정과 정의가 과거보다 더 진전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인류 역사의 발전이란 완성된 정의,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완벽한 실현이 아니라, 이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지난 정권 말기부터 국민들 사이에 큰 공감을 얻더니, 정권이 바뀌고 정책 기조가 바뀌었는데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새 정부에 대해 기대를 갖게 만든 말이었다. 그런데 임기 3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과연 기회는 과거보다 실질적으로 더 평등해졌고, 과정은 더 투명하고 공정해졌으며, 결과는 많은 사람이 느끼기에 더 정의로운 것인가?
공정이란 불편부당함을 말한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유리함이나 불리함을 주는 일 없이, 같은 기준으로 모든 사람, 모든 문제를 처리할 때 우리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초기부터 가장 많이 비판받았던 것이 바로 내로남불이다. 야당 시절에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하던 일을 여당이 되자 앞장서서 저지르는 경우가 한두 가지였던가? 더욱이 여당 쪽 인사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무조건 감싸고 덮으려 하는 태도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최근에 문제가 된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박원순 사태, 추미애 사태 등에서 일관되게 사실확인을 앞세우지 않고 감싸기부터 했던 것을 국민들은 공정하다고 느낄까?
공정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정의로운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과정의 공정성이다. 우리가 검찰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에 대해 가장 큰 불신을 갖는 경우도 수사절차나 재판절차가 공정하지 않은 경우이다. 예컨대, 정치권력의 외압이 문제가 되는 경우, 사건 당사자가 담당 검사 또는 판사와 특별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을 때는 그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수사절차나 재판절차의 결과가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공정과 정의는 별개가 아니다. 공정과 정의는 개념상 구분은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공정과 정의가 아닌, 편 가르기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감싸야 하며, 상대편이면 무조건 틀렸고 비난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공정, 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제안할 경우 여당인 공화당조차 이건 아니라고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야당과 협력하여 그 정책을 저지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위한 판단에서 편 가르기가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여당은 평소에 반대하던 정책조차도 청와대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면 무조건 옹호하고 명백히 잘못된 인사나 심지어 고위공직자의 비위 사실에 대해서조차 내 편이라는 이유로 일단 감싸기로 시작한다. 이것이 공정이고 정의인가? 내 편만이 무조건 옳다는 오만과 독선은 민주주의의 출발점과 상충할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좌절과 분노, 심지어 절망을 안겨준다.
공정과 정의가 말장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과 정의의 기준이 편 가르기로 달라질 수는 없다.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기준은 인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를 무조건 내 편 감싸기 위해 옹호하는 발언들로 왜곡하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고 역사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과연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시각에서 오늘의 문제를 평가할 때 당신들은 뭐라 변명할 수 있는가?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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