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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앞에 앉아 “건배∼” 코로나시대 뉴노멀 ‘랜선회식’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입력 : 2020-09-14 19:27:06 수정 : 2020-09-14 21: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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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회사원끼리·오랜 친구끼리
취향껏 안주 준비 시간 맞춰 접속
“얼굴·목소리 생생… 채팅과 달라”
직장인 “2차·음주 강요 없어 좋아”
전문가 “젊은 세대 新문화로 정착”

“다들 준비하시고 하나, 둘, 셋 하면 건배하는 겁니다.”

회사원 박은지(34)씨와 5명의 친구들은 지난 주말 노트북 앞에 앉아 건배사를 외쳤다. 서울과 대전, 경북 안동과 포항 등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사는 15년 지기 친구들은 1년에 두세 번씩 지역을 정해 만났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약속을 미루고 있었지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짜낸 묘안이 ‘랜선 회식’이었다. 랜선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한 유선 케이블인 랜(LAN)과 선(線)의 합성어로 비대면·온라인을 뜻한다.

박씨와 친구들은 취향대로 준비한 음식과 마실 것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생선회와 파스타, 김치전, 과일 같은 안주에 맥주, 와인 등 갖가지 주류들이 노트북 화면을 채웠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각자의 잔을 카메라에 가까이 가져가 “건배”를 외쳤다. 자신이 준비한 술과 안주 소개를 시작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근황 토크’를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박씨는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하는 대화는 단체 채팅방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과 달랐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새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의 변화가 지속하는 가운데 회식에도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나타나고 있다. 각자 음식을 먹으면서도 화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함께하는 방식이다. 장기화하는 ‘코로나 시대’에 슬기로운 거리두기일 뿐 아니라 변화하는 가치관에 맞춰 회식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원 이모(37)씨가 속한 팀은 지난 3월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한 달에 두 번씩 랜선 회식을 하고 있다. 이씨는 주로 배달음식을 시켜 음식을 준비하는데 영수증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환급해준다. 생소한 방식 탓에 처음에는 음식만 가져다 놓고 서로 어색하게 먹는 모습만 보여주기 일쑤였다. 요즘엔 회식의 테마를 정해 이야기를 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음악이 주제인 날에는 좋아하는 노래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자신이 구매한 물건을 ‘플렉스’(과시하거나 자랑하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박은지씨와 친구들도 각자의 근황을 주로 전했던 지난 회식과 달리 다음부터는 주제가 생긴다. ‘홈트’(홈트레이닝·재택운동)가 주제인 다음 회식에는 다 같이 운동복 차림으로 ‘랜선 운동’도 하기로 했다.

랜선 회식을 경험한 이들은 주로 개인 취향이 존중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각자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며 술을 마시거나 ‘n차’ 회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첫 랜선 회식을 했다는 직장인 정모(27)씨는 “업무 특성상 야근과 회식이 잦았는데 (랜선 회식은) 확실히 부담이 작았다. 아직 막내급인데 적당히 마실 수 있고 끝나고도 바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랜선 회식이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회식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부터 회식 문화에 대한 변화 요구가 지속돼 왔다”며 “9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비대면 방식의 회식이 직장인, 취업준비생, 학생을 막론하고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그간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 성희롱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적합하다”고 부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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