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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맡길 곳 없어 휴가 내면 눈치… 단축근무? 어차피 못 써요” [연중기획 - 피로사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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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06 10:00:00 수정 : 2020-09-06 13: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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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고달픈 맞벌이 부부
코로나 장기화로 영유아 양육 ‘전쟁’
다양한 저출산 정책에도 현실은 냉랭
육아 존중하는 직장 문화 여전히 부족
일·가정 양립 위한 지원제도 안착 시급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고요.”

대학 산학협력단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윤희수(32)씨는 오는 11월 출산을 앞두고 회사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출산에 맞춰 아이에게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에 약 석 달간의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을 붙여 사용해 약 1년 정도 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교수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둘 다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부당한 상황임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냉랭한 반응을 보이거나 되레 눈치를 주기까지 했다.

윤씨는 “임신하고 일하는 게 힘들어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기다리면서 버텼는데 너무 속상하다”며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교수가 벌금을 내면 그만일 텐데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육아휴직제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돌봄제도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윤씨처럼 직장 내 분위기로 출산 때부터 애로가 시작되고, 이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난관투성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찾지 못하는 사정으로, 양가 부모가 노후 생활을 포기하고 손주를 맡아 키우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나마 맡길 부모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맞벌이 부부의 육아는 험난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불편함 없이 일과 돌봄을 양립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로 가중된 돌봄 문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출산 장려책과 현실 속 양육의 괴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면서, 맞벌이 부모들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아이 봐줄 곳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는 전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됐고, 방과 후 시간을 책임져준 학원 역시 운영이 중단됐다. 어린이집의 경우 강화된 방역 조치에 따라 가정 돌봄이 가능한 경우 등원이 제한되고 최소한의 교사만 출근해 긴급보육을 담당한다.

네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학부모는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최소한의 교사만 나와 영유아 통합보육을 실시한다는데 오히려 더 위험이 가중되는 느낌이라 보내기가 어렵다”며 “주 초에는 부모님 도움을 받고 그 이후에는 휴가를 신청한 상황인데, 계속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대체 어디에 맡겨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올해 초 정부가 신설한 가족돌봄휴가 제도가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이 제도만으론 육아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가족돌봄휴가는 노동자가 자녀 양육이나 가족의 질병 등 긴급하게 가족을 돌봐야 할 때 연간 최대 10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제도다. 정부로부터 노동자 1명당 하루 5만원씩 최대 50만원의 가족돌봄 비용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맞벌이 부부 가운데 이미 가족돌봄휴가를 모두 써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돌봄휴가 비용 지원을 받은 노동자 11만8891명 중 지원한도 10일을 모두 소진한 비율은 40.4%다.

육아휴직제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출산휴가제도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제도들도 마찬가지다. 사용조건이 맞지 않거나 영세한 규모의 기업일 경우 사용을 꺼리는 직장의 분위기 때문에 이를 선뜻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용을 거부당하기도 한다.

두 살 딸과 네 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시부모님은 안 계시고 친정부모님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며 “아이들을 등하원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며칠간의 고민 끝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회사에서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정부에서 추진 중인 출산장려 정책을 볼 때마다 괴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안착 위한 정책적 노력 시급”

맞벌이 부부들은 일과 양육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 이유로 육아를 존중하는 직장 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육아존중문화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긍정적 육아문화 조성방안연구’에서 전국 20~4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장 육아환경 및 문화가 어느 정도 육아친화적인가’에 대해 100점 만점으로 평가를 실시한 결과 평균 54.5점이라는 낮은 점수가 나왔다.

‘육아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 요소’ 항목에선 ‘육아가족에 배려가 부족한 직장문화’가 5점 만점 중 4.2점으로 가장 높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부족’(4.1점), ‘아이 기르는 일에 대한 가치 저평가’(4.0)가 뒤를 그 이었다.

 

응답자들은 긍정적 육아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우리 사회 육아문화가 지닌 부정적 요소를 줄이고 긍정 육아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7.2%가 ‘육아휴직제,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등 육아관련 제도의 안착’이라고 답했다. 이어 ‘양육하는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정, 배려, 존중’이 20.8%, ‘가정 내 양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확대’ 16.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장 내 육아문화를 긍적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제도 사용 의무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정책적 노력에 관해서는 응답자의 30.8%가 ‘중앙정부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지원 정책 추진’을 꼽았다. 또 ‘직장 내 육아친화적 문화 조성 노력’(21.5%), ‘중앙정부와 지자체 중심의 육아친화적 환경 개선 노력’(14.2%),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언론을 통한 캠페인 확대’(12.3%) 등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7월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토론회를 통해 “고용형태나 지위에 따라 아이 돌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영·유아기 일정 기간 동안은 부모가 직접 돌볼 수 있도록 비용과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출산·육아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0년 전 육아휴직 도입’ 덴마크, 보육 서비스 체계화

 

전통적인 복지강국인 북유럽 국가들은 아이를 키우기에도 좋은 환경인 것으로 평가됐다. 짧은 근무시간과 잘 갖춰진 육아휴직 제도 및 보육서비스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올해 초 미국의 시사지인 US뉴스&월드리포트는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나라’ 조사 결과 덴마크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 뒤를 이어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특히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성평등 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로, 육아에서도 아버지의 참여율이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이들 정부의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부모가 함께 평등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잘 마련돼 있다고 평가했다.

덴마크는 일·가정 양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로 근무시간은 유럽에서 가장 짧은 주당 37시간이다. 덴마크는 100년 전부터 육아휴직을 도입, 현재 부모에게 총 52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특히 어머니에게는 출산 전 4주와 출산 후 14주의 육아휴직이 보장되고, 아버지에게도 출산 14주 내에 2주의 휴직이 보장된다. 나머지 32주는 부모가 나눠서 사용이 가능하다.

 

노르웨이는 총 49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어머니는 출산 전 3주, 출산 후 15주를 보장받으며,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은 기간인 출산 후 15주의 휴직을 보장받고 나머지 16주의 휴직 기간은 부모가 자유롭게 나눠 쓸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모두 부모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체계화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다 보니 이들 나라에서는 상당수의 부모들이 생후 1년까지는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1세 이후부터는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도록 하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긴다. 또 직장 내 일·가정 양립 제도도 잘 구축돼 있어 아이의 질병이나 교육으로 유급휴가를 쓰거나 조기퇴근 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우리나라는 법적인 육아휴직 기간은 덴마크나 노르웨이보다 오히려 길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동일한 자녀에 대해 부부가 각각 1년씩 총 2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북유럽 국가보다 훨씬 육아가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법을 넘어서 과도한 근무 시간과 육아 휴직을 기피하는 기업 환경, 육아에 대한 남녀 불평등 등 육아를 대하는 사회적 관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이들 국가가 시사하는 바는 육아가 존중되는 사회환경이 만들어지려면 정책적 변화와 문화적인 변화가 동시에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라며 “더불어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국가의 재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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