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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아칼럼] 진정한 다수결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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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23 21:48:06 수정 : 2020-08-23 21: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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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이란 양날의 칼과 같아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파괴해
소수당 목소리 일방 무시하면
다수당, 오만·독선·독재에 빠져

다수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는 “국민주권”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하나의 의사로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를 국민의 의사에 갈음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다수의 의사라는 것은 쉽게 확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수시로 변화한다. 또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국가의 중요 정책들을 전문성이 없는 일반 국민들의 다수로 결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대표자를 뽑아 국가 사무를 국민 대신 담당하게 하는 대의제(간접 민주제)가 보편화되어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여기서도 다수결은 중요하다. 대표자를 뽑는 것도 다수결이고 선출된 대표자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위원회나 국회의 이름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다수결이 적용된다.

그러면 다수의 결정은 항상 옳은가. 인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히틀러의 나치당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우리 역사상 최악의 독재적 헌법으로 평가되는 유신헌법도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91.5% 찬성을 얻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들에서는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헌법개정이나 대통령 탄핵소추 등에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것처럼 가중다수결을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에 의해 결정된 법률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과 같은 방법으로 그 내용적 정당성을 다툴 수 있게도 한다.

그러고 보면 다수결이란 양날의 칼과도 같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이를 자칫 잘못 사용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위한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을 존중하되, 항상 소수자 보호를 고려해야 하며, 의회 다수당의 주도적인 역할은 인정하되 소수당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근 민주화 이후 최대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행보는 다수의 횡포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여당도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과거 야당 시절 다수 여당에 대해 얼마나 강력하게 항의하고 호소했던가. 그런데 지금 권력의 맛에 취해 과거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항상 옳고 우리가 밀어붙이면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은 독선이 되고 독재가 된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수천 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제도로 선택한 것도,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방식으로 인정한 것도 그것이 완전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개선하는 것이 자신을 완전하다고 주장했던 철인정치나 전체주의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다수결이란 다수결의 한계를 의식하고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조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수의 힘에 취하고 다수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이라도 합리적인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며, 결국은 다수 자체가 내부적으로 붕괴하게 한다. 민주주의란, 민주적 다수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며 다수가 소수 위에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일시적인 정치적 승리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적과 동지의 논리에 빠져 소수야당을 동반자가 아닌 궤멸하여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에 반하는 것이다.

완벽한 민주주의도 영원한 독재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생각하자. 다수결이 진리는 아니다. 진리가 다수결에 의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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